2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의료연대본부가 ‘의사인력 증원, 이렇게는 안된다’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간담회에서 이들은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가 줄어든 병동의 간호인력에게 연차사용과 무급휴가를 강요하고 의사 업무를 전가시켜 불법의료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준헌 기자

“무급휴가 가고 싶지 않다고 하니, 일해본 적 없는 다른 병동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합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사고 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일을 해야 합니다.”

서울대병원 소속 간호사인 박나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학교병원분회 사무장은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의료공백이 한달 넘게 이어지며 병원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영상 어려움이 닥친 병원들이 남은 의료진에 무급 휴가를 강요하거나 전공의 업무를 간호사들에게 떠넘기고 있으면서도 법적 보호책은 미비한 상태라고 의료연대본부는 주장했다.

의료연대본부는 “현재 강원대병원, 서울대병원 등 10개 병원이 병동을 통합 또는 폐쇄해 해당 병동의 간호 인력들이 타 병동에 재배치되거나 연차 소진을 강요당했다”고 밝혔다.

김동아 의료연대본부 정책부장은 “연차 소진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병동 재배치나 무급휴가, 혹은 다음 달 발생하는 오프(휴가)를 당겨쓰는 ‘마이너스 오프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며 “인력을 1명만 배치해 의도적으로 업무를 어렵게 하기도 한다. 간호사들은 업무부담을 느낄 바에는 무급휴가가 낫겠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간호 보조인력으로 일하는 김영숙씨는 “가령 내과 간호사들이 외과로 가면, 환자 관장 등의 업무를 해본 적이 없어서 부담이 굉장히 크다”면서 “무급휴가를 가지 않으면, 이처럼 낯선 업무를 해야하는 부담이 크다”고 했다.

이상윤 의료연대본부 정책위원은 “의사와 정부 갈등 속에서 숨겨진 책임 주체는 병원장들”이라면서 “병원장들이 손쉽게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근로기준법상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정부가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행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에 대한 불안감 호소도 이어졌다. 당시 정부는 시범사업으로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간호사들이 “법적 처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했으나,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이 지게 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의료연대본부가 ‘의사인력 증원, 이렇게는 안된다’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간담회에서 이들은 “상급종합병원에서 환자가 줄어든 병동의 간호인력에게 연차사용과 무급휴가를 강요하고 의사 업무를 전가시켜 불법의료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준헌 기자

정유지 의료연대본부 강원대학교병원분회 사무장은 “(시범사업에는) 교육과 훈련을 명시했지만 현장에서는 교육·훈련 숙련도 평가 없이 병동간호사들이 경험이 전혀 없는 전담간호사로 전보 배치되고, 일반 간호사들도 드레싱(상처치료 과정), 처방 등을 강제 지시받는다”면서 “정부 지침 사업은 간호사에게 강제할 수 없다고 명시했으나, 현장에서는 경영진과 간호부 압박으로 사실상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정 사무장은 “작금의 진료 공백 사태는 얼마나 장기화될지 알 수 없다. 추후에는 각종 고소·고발, 법정의 다툼이 빈번해질 수 있다”며 “정부가 환자 곁을 지키는 간호사들을 보호할 명확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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