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부천을 오가는 10번 버스 뒷문 바닥에 위치한 리프트(휠체어 승강설비) 손잡이. 10일 오후 시각장애인 A씨가 리프트 이용을 원했지만, 손잡이가 꿈쩍하지 않아 이용하지 못했다. [사진=김민주 기자]

[폴리뉴스 김민주 기자] 지난 10일 오후 6시 반, 국회의사당 5번 출구 앞 버스정류장에서 40대로 보이는 시각장애인 A씨가 흰 지팡이를 든 채 울부짖고 있었다. A씨는 인도와 차도의 턱이 높아 리프트(휠체어 승강설비)를 이용해 안전하게 탑승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용하려는 10번 버스의 리프트는 작동하지 않았다. 버스 기사가 리프트 손잡이를 들어 올리려 한참을 씨름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15분 뒤 도착한 또 다른 10번 버스도 작동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승객들이 가득 차 있는 두 차량을 보며 A씨는 “이미 5대나 보냈어요. 나는 잘못이 없어요. 점검하지 않은 게 잘못이에요. 이용하게 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에 발간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매뉴얼’. [사진=매뉴얼 캡쳐]

1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종오 진보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받은 ‘2019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매뉴얼’ 자료를 보면 ‘휠체어 승강설비’의 설치·작동 유무를 평가하는 항목은 있지만, 작동되지 않는 경우 조치 규정은 없다. 

한국교통안전공단 담당 선임연구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평가 결과를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 형태로 매년 발간해 각 지방자치단체로 통보한다”며 “이후 관리, 조치는 지자체와 버스 운영 사업체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가는 홀수해에 특별시·광역시를, 짝수해에 도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전국 조사는 5년 단위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국토부 차원의 조치에 대해 그는 “시정 조치를 요청할 수는 있는데, 지금까지 휠체어 승강설비에 대해 적합하지 않게 나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거의 100%라고 계속 나와서 따로 조치는 없었을 것”이라며 “간헐적으로 고장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저희가 1년에 한 번 표본을 선정해서 조사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매뉴얼에 따르면 ‘경사판이 설치돼 있으나 작동되지 않을 때’의 경우 ‘2(미흡)’으로 표시해야 하며, 평가결과 작성 시에도 작동여부를 기입하도록 돼 있다. 리프트 작동이 대체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적합하지 않게 나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100%라고 계속 나왔다”는 건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에 발간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매뉴얼’에 따르면 버스를 평가할 때, 휠체어 승강설비의 경우 ‘경사판이 설치돼 있으나 작동되지 않을 때’ ‘2(미흡)’으로 표시해야 하며, 평가결과 작성 시에도 작동 여부를 기입하도록 돼 있다. [사진=매뉴얼 캡쳐]

지자체도 점검 규정이 없었다. 경기도 교통국 버스관리과의 담당 주무관은 “점검 관련 규정은 없다”며 “매년 버스업체 안전 점검을 할 때 리프트 작동 상황도 점검을 하긴 하는데 대수가 워낙 많다 보니 전수 점검을 하긴 어렵고 점검을 해도 또 고장이 날 때가 있다. 상시 점검은 운송업체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 리프트는 점검해도 자주 고장이 난다. 수동이 안 될 이유가 없는데 한번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토부와 지자체 모두 주기적으로 리프트 작동 여부를 점검한다고 주장하지만 ‘상시 점검’은 사업체에 책임을 넘겼다. 10번 버스를 운영하는 부천버스주식회사 관계자는 지난 11일 “점검을 하긴 하는데 자주 사용하지 않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며 “어제 보고를 받고 아침부터 정비사들이 나가서 전수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날 “저희는 모두 수동 리프트다. 손잡이 쪽에 이물질이 많이 껴서 뻑뻑해지니 사람 힘으로 안 됐던 거다. 기구를 이용해서 처리했고 청소도 해서 지금은 이상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점검하려 한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관련 교육도 1년에 한 번씩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단체는 이런 이유로 장애인이 버스 이용을 꺼려 버스를 잘 타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파악하고 있지만 이런 사례가 많이 들어온 건 아니다. 장애인 분들이 이런 문제가 발생하니 버스 자체를 잘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저상버스가 많지도 않고, 리프트 작동도 잘 안 되고, 시민의식 문제도 있어서 장애인 콜택시나 지하철을 대부분 이용한다”고 말했다. 

진보당 윤종오 의원(울산 북구)은 기자에게 “저상버스 도입 비율 등 통계 수치에만 급급해 유지보수나 관리는 소홀하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 사례”라며 “저상버스 도입 확대뿐 아니라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관계당국이 평소에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국토위 국정감사에서 저상버스 리프트 등 교통약자 이동 관련 시설의 유지보수와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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