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만에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직에서 사퇴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늑장수사로 자신을 괴롭힌다며 “강력 대응”을 공언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강력 대응”해야 할 곳은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대령)의 항명죄 등을 다루는 군사법원 재판이다. 박 대령의 항명죄는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죄와 긴밀히 엮여 있다. 항명죄는 ‘명령이 정당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박 대령이 따르지 않은 ‘명령’이 정당한지, 장관의 직권남용은 없었는지 등을 군사법원이 살펴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공수처 수사의 전초전 ‘군사재판’

박 대령 재판은 이 전 장관에 대한 공수처 수사의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전초전이다. 군형법에서 항명은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경우에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박 대령 쪽은 지난해 7월 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채아무개 상병 사건 조사 당시 이 전 장관이 내린 ‘이첩 보류’ 등 지시가 부당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첫 분수령은 지난 2월 1일 열린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증인신문이었다. 그는 이른바 ‘윤석열 대통령 격노설’(격노설)을 박 대령에게 언급한 인물로 꼽힌다. 지난해 7월 30일 이 전 장관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1사단장을 포함한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한다’는 박 대령의 보고서를 결재한 뒤 이튿날 이를 번복했다. 이후 김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윤 대통령이 격노해 장관이 지시를 번복했다’라고 말했다는 게 박 대령 주장이다. 전모를 확인할 첫 징검다리가 김 사령관이라는 뜻이다.

지난 2월 김 사령관 증인신문 당시 박 대령 변호인이 앞세운 문건은 ‘채상병 사건의 관계자 변경시 예상되는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문서였다.

수사과정에서 상급제대 의견에 의한 관계자 변경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해당. 언론 등 노출될 경우 BH(대통령실) 및 국방부는 정치적·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함.

장관 지시 직후 박 대령이 작성한 이 문서에는 ‘윗선 지시에 따라 혐의자를 변경하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김 사령관이 이 문서를 보고받은 뒤 반절로 접어 본인의 노란색 수첩 속에 넣었다는 게 박 대령 진술이다.

재판에서 김 사령관은 문서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자신이 박진희 당시 국방부 군사보좌관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 내용이 해당 문서와 동일하다는 점이 제시되자 말을 바꿨다. ‘문건을 본 적은 없고, 다만 박 대령이 문건을 읽어주는 걸 받아적어 박 보좌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는 게 김 사령관 증언이었다.

박 대령이 김사령관에게, 김 사령관이 박 전 군사보좌관에게 전달한 문서·메시지에 ‘관계자(관련자) 변경’이라는 문구가 언급한 것은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전 장관이 ‘관계자 변경’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 중이기 때문이다. 이 전 장관 주장이 맞는다면, 박 대령→김 사령관, 김 사령관→박 군사보좌관이 ‘관계자 변경’에 관한 메시지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이 문서·메시지는 이 전 장관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박 대령 쪽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

■“이종섭, 증인으로 나오라”

핵심은 이 전 장관이다. 박 대령 쪽은 그를 법정에 세우려 한다. 박 대령을 대리하고 있는 김정민 변호사는 “우리가 신청할 제1번 증인이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라며 지난달 29일 군사법원에 이 전 장관에 대한 증인신청서를 제출했다. 군사법원 재판부가 검토 중이다.

법정에서 증인은 진실을 말할 의미가 있다. 어기면 위증죄로 처벌받는다. 위증해도 고발하려면 위원회 의결이 필요한 국회에서의 증언과 차이가 있다. 일단 법정에 증인으로 서면 그 의 진술 내용과 태도가 당시 정황을 뚜렷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공수처 수사관들이 박 대령 재판이 열릴 때마다 군사법원을 찾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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