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스웨덴의 환경 영웅 그레타 툰베리가 풍력발전소 설치를 반대한다는 거였어요. “툰베리가 다국적 정유업체에서 로비를 받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노르웨이에 풍력발전 단지가 있는데, 거기서 풍력발전에 반대하는 순록 유목민 편을 든다는군요. 그레타 툰베리가 배신하다니! from 노르웨이의 기후시민이”(☞12회에서 이어짐)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 먼저 노르웨이 최북단의 핀마크(Finnmark)고원으로 갔어요. 순록과 순록을 따라다니며 목축하는 사미족이 기후변화로 위험에 처한 사실을 눈으로 보고 싶었어요. 핀마크고원에는 약 3천명의 순록치기가 24만마리 순록을 목축한다고 하더군요.

비행기는 만석이었요. 사람들은 고급 DSLR 카메라에 삼각대를 가지고 있었고요.
“당신네는 왜 카메라가 없어요? 며칠 전에도 화려한 오로라가 밤하늘을 뒤덮었다고 하던데.”
“우리는 핀마크고원에 순록을 보러 갑니다.”

사람들은 북극선 66.3도에서도 한참 위쪽인 북위 69도의 도시 트롬쇠에서 내려 화려한 밤을 기대하며 각각의 처소로 기어들어갔죠. 우리는 다시 자동차를 타고 핀마크고원으로 올라갔고요.

상처 가득한 순록의 입

고원에 오르자 평탄한 구릉이 펼쳐지고 순록들이 지의류를 뜯고 있었어요. 북극 원주민인 사미족의 젊은 목동이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세우더니, 순록들에게 소금을 먹이기 시작했죠. 추운 날씨에 사는 초식동물은 염분이 부족해요. 순록의 가축이 된 데에는 소금의 역할이 크다고 합니다. 소금을 먹던 순록이 말했어요.

“눈이 온 날에도 우리가 주둥이로 눈을 치우면, 싱싱한 지의류 식물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찾기가 힘들어졌어요.”

목동이 말했죠.

“따뜻한 겨울이 문제예요. 날씨가 따뜻해졌다가 하루이틀 혹한이 닥치면, 녹은 눈이 다시 얼면서 빙판이 되어버리거든요. 얼음이 지의류를 가둬버리는 거죠.”

“그래서 내 입이 이렇게 상처투성이라니까요!"

순록과 순록치기는 얼음에 관해 잘 알아야 해요. 얼음에 관한 단어도 여러 개죠. 한겨울 추운 날에 생기는 굵은 눈 결정을 사미족 말로 ‘세아나시’라고 불러요. 세아나시가 쌓이면 균질한 밀도의 설괴(눈의 덩어리)인 ‘구오흐툰’을 만들고요. 마치 모래알 같은 눈 알갱이로 양탄자를 깐 것과 같아서, 순록은 쉽게 구오흐툰을 주둥이로 헤치며 지의류를 먹을 수 있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겨울에 따뜻한 날이 이어진다거나, 봄이 너무 일찍 왔다거나 해서 세아나시가 녹으면 어떻게 될까요? 순록이 먹이를 찾자고 눈을 걸어다니며, 눈 아래 지의류가 짓뭉개질 거예요. 기후위기 시대, 순록이 굶주리는 이유에요. 목동이 말했어요.

“순록이 없는 사미족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할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셨어요. 우리 조상들은 순록 우유를 먹고, 순록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순록 뿔로 썰매를 만들고, 순록을 잡아 고기를 먹었어요. 많은 사미족 사람들이 남쪽의 대도시로 떠났지만, 우리 가족처럼 전통을 지키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핀마크 고원도 너무 따뜻해졌죠.”

목동은 순록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수만 년 전, 순록의 신이 피를 흘리니 강이 되었고, 털을 땅에 심더니 나무와 풀이 되었습니다. 그가 다시 밤하늘에 눈을 던지니 별이 되었지요. 할아버지는 순록과 우리 민족이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셨죠.”

하지만 인간과 순록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많이 세워야 하는 건 상식이죠. 그런데, 지금 야생 순록과 가축화된 순록이 사는 북극권과 스칸디나비아 고원 지대에 풍력발전소 붐이 일고 있어요. 사람은 적고 바람이 센 곳이니, 다국적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죠. 순록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기후변화에 기여하기라도 했나요? 석탄을 땠나요? 자동차를 몰았나요?”

“맞아요. 당신들은 무탄소 썰매를 끌었죠. 죄가 없어요.”

“며칠 전, 순록의 지도자 ‘루돌프’가 현장 조사차 핀마크고원에 다녀갔어요. 매년 죽어나가는 순록 이야기를 듣고 이를 인간들에게 알리기 위해 인간 세계의 유명한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에게 부탁하기로 했답니다. 지금 노르웨이 중부 포센(Fosen) 반도의 순록들이 모여 풍력발전단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을 거예요. 루돌프도 거기로 갔어요.”


툰베리를 만나다 

‘포센 풍력발전 프로젝트’는 6곳 발전단지가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육상 풍력사업입니다. 연간 전력 생산량만 3.4테라와트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순록과 순록치기와 이동 경로에 있어요. 포센 반도의 순록 집회장 가는 길에 만난 순록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 터빈 날개가 54.7m래요. 그게 돌면서 나는 소리가 슝슝… 매일 잠을 설쳐서 미칠 지경이에요.”

“우리는 늑대를 조심해야 하는 초식동물입니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많은 종이에요. 저 날개가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죠. 돈키호테처럼 이 뿔로 가서 처박고 싶어요.”

“2021년 10월, 노르웨이 대법원이 포센 풍력발전단지 설치가 오랫동안 순록을 길러 온 원주민 사미족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렸어요. 그 판결은 순록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포센 반도의 집회장에 도착했어요. 수만 마리의 순록 말고도 사미족 원주민도 수십 명 있었죠. 커다란 뿔을 가진 순록 한 마리가 바위 위에 올라가자, 군중의 분위기가 엄숙해졌어요. 루돌프였지요.

“여러분 말을 잘 이해했습니다. 제가 조사해보니, 북극의 순록은 기후변화로 굶주리고 있고, 여러분은 풍력발전으로 예민해져 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를 데려왔습니다. 그가 인간 세상에 나가 순록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찾던 툰베리였어요! 그가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마이크를 잡았어요.

“원주민의 권리와 인권은 기후대응과 기후행동에 있어서 손잡고 가야 합니다. 누구의 이익을 위해서 진행되어선 안 됩니다. 그것은 기후정의가 아닙니다.”

사미족 참가자들도 박수쳤어요. 그들은 ‘사미족과 순록은 운명 공동체’라거나 ‘녹색 식민주의 거부’라는 등의 현수막을 들고 있었죠.

툰베리의 연설이 끝나자, 루돌프의 썰매가 나타났어요. 툰베리는 루돌프가 끄는 썰매에 올라탔습니다. 루돌프가 앞발을 구르니 썰매가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툰베리가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오슬로로 갑니다!”

툰베리의 ‘더 큰’ 기후정의 

이튿날, 텔레비전에 툰베리가 나왔어요. ‘포센 반도의 151개 풍력발전기를 철거하라’며, 툰베리와 젊은 환경운동가들이 노르웨이 오슬로의 에너지부 청사 앞에서 노숙 시위를 시작한 거예요.

“그레타 툰베리와 환경운동가들이 노르웨이 에너지부 청사 입구를 막고 오랫동안 순록을 쳐온 사미족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땅에 건설된 풍력발전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툰베리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세계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이 원주민의 권리를 희생하여 이뤄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홈스 반장이 한 마디 했지요.

“재생에너지 확대만 주장하던 툰베리가 더 큰 ‘기후정의’라는 원칙을 제시한 셈이 되었군.”

와트슨 요원이 웃었습니다.

“제보가 거짓말은 아니었네요.”

사흘 뒤, 경찰은 툰베리와 젊은 운동가들을 체포했어요. 툰베리는 끝까지 저항했지만, 경찰관들에게 몸이 들린 채 끌려나가며 노숙 시위를 마쳐야했죠.

그리고 일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3월 언론은 포센 반도의 발전업체들과 사미족 원주민과의 분쟁이 최종 해결됐다고 보도했어요. 풍력발전을 계속하는 조건으로 업체 쪽이 500만크로네(6억2000만원)를 사미족 문화진흥기금으로 내놓기로 했다는 거였어요. 순록에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죠.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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