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기간이 끝난 임차인에게 집주인이 임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새 임차인을 들였더라도 점유권을 편취했다는 이유로는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검찰은 집주인이 임차보증금을 돌려준다고 속여 세입자의 ‘오피스텔 점유권’을 가져갔다며 사기죄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오피스텔의 소유자는 집주인이기 때문에 점유권도 집주인에게 있어 점유권 편취로는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집주인 ㄱ씨의 특정경제범죄처벌법 위반(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지난달 12일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지난 2020년 ㄱ씨는 계약기간이 끝난 세입자 ㄴ씨에게 오피스텔 임차보증금 1억2000만원을 돌려줄 수 없는데도 “일단 5000만원을 송금해주고 7000만원은 다음에 송금해주겠다”고 속인 뒤 내보내고 남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계약만료 뒤 ㄴ씨는 오피스텔에서 짐을 뺐지만, ㄱ씨로부터 임차보증금을 받지 못했다. ㄴ씨의 요구에 ㄱ씨는 이체 한도를 이유로 5000만원만 먼저 돌려준 뒤, 새 임차인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그러나 ㄴ씨는 이체 한도 문제로 1억2000만원을 한번에 송금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고, 당시 별다른 수입이 없어 ㄴ씨에게 임차보증금을 돌려줄 의사나 능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1·2심은 ㄱ씨에게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원심 법원은 “피해자는 임차목적물인 오피스텔의 반환을 거절해 계속 점유할 권리가 있는데도 피고인의 기망행위에 속아 피고인에게 점유를 이전했기 때문에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 말에 속아 나머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않고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이전했더라도 사기죄에서 재산상의 이익을 처분했다고 볼 수 없어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쟁점은 오피스텔의 점유권이 누구에게 있냐였다. 사기죄는 타인을 속여 ‘타인의 재물과 재산상의 이익'을 편취하는 범죄다. 이때 특정한 재물의 사용권과 수익권은 재물과 별개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오피스텔의 소유권은 ㄱ씨에게 있기 때문에 점유권 또한 ㄱ씨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법원은 ㄴ씨가 오피스텔 점유권을 편취당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사기죄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에 잘못이 있다고 봤다. 편취의 대상은 점유권이 아니라 보증금이어야 한다는 취지다.

한편 ㄱ씨는 별도의 부동산·사모펀드 투자 사기 범죄로도 함께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이 전체 판결을 파기하면서 ㄱ씨의 형량은 파기환송심에서는 새롭게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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