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종합지원실 현판식에서 관계자가 제22대 국회의원들이 착용할 300개의 국회의원 배지를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심판만 있고, 정책은 없다. 여도 야도 서로를 ‘거악’으로 상정하고 심판하겠다고 난리다. 성평등 정책은 어느 선거에서건 논외로 취급됐기 때문에 놀랄 것도 없지만, 이토록 공약 얘기가 드문 선거전은 처음이다. 이쯤 하면 22대 총선은 ‘정책 선거’가 아니라 ‘심판 선거’로 불릴 만 하다.

그러나 중요한 국면마다 젠더 이슈가 터져 나오며, 우리 사회에 성평등이 필요함을 이렇게 여실히 보여주는 선거도 드물다 싶다. 2020년 총선에 비해서도 5% 가량 쪼그라든 지역구 후보의 여성 비율(14.2%)은 여성 과소대표의 현실을 후퇴시켰다. 성범죄 가해자 변호인으로 나섰던 후보들의 2차 가해성 변론,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정 후보의 ‘이대생 성 상납’ 발언, 성소수자인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의 더불어민주연합 공천 배제, 나경원 국민의힘 서울 동작을 후보를 향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나베’라는 멸칭 등 성차별 이슈는 선거전 내내 터져 나왔다.

이럴 때일수록 이슈를 다루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언론의 역할이란 ‘무슨 질문을 어떻게 묻는가’에 있으며, 젠더 보도란 결국 성인지감수성에 입각한 관점의 문제다.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성평등에 입각해 다른 관점의 질문을 부지런히 하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일부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후보자들의 ‘2차 가해’ 변호도 검증 도마에

22대 총선에서 언론은 후보자들의 성범죄 가해자 변호 이력을 집중 캐물었다. 변호사 출신의 후보자들 중 과거 성범죄 가해자의 변호를 맡아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변론을 하지는 않았는지 검증하는 시도는 선거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후보자가 이른바 ‘강간 통념’(여성이 거절했더라도 실제는 관계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 통념)이나 ‘피해자다움’을 무기로 변론하지 않았는지 여러 언론에서 집요하게 파헤쳤다.

그 결과, ‘2차 가해’ 논란 끝 조수진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후보가 낙마했고, 국민의힘 대전 서갑 조수연, 울산 남갑 김상욱, 서울 양천갑 구자룡, 대구 달서갑 유영하 후보 등에 관한 보도도 이어졌다. 이는 국회의원 후보가 갖추어야 할 자질 중 하나인 성인지 감수성을 더욱 따져 묻는 전기를 마련했다. 덕분에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 시장화 경향을 환기하고, 변호사들의 자성과 공적인 해법을 촉구하는 계기도 됐다.

▲ 4월2일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대전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타임월드를 방문하여 조수연 대전 서구(갑), 양홍규 대전 서구(을) 후보와 함께 시민들에게 인사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했다. 사진=국민의힘 홈페이지

그러나 몇몇 언론사는 ‘단독’이라는 타이틀 아래 후보자가 변호를 맡았던 성범죄의 잔혹성만 묘사하고, 정작 후보자가 어떤 변론을 했는지는 생략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문제는 후보들이 얼마나 악성인 범죄자를 변호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문제적인 변론을 했는가 라는 점에서 이는 무책임한 보도다.

‘선거전 설화’에 대응하는 자세

이번 선거에서도 따옴표 저널리즘은 어김없었다. 후보들의 과거 유튜브 발언들은 따다 쓰기에 딱일 만큼 자극적이었다. 검증 차원에서 후보들의 과거 행적을 뒤져보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절차다. 그러나 발언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는 것은, PV만 가져가겠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해당 발언들이 나온 맥락이 무엇이며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후보의 주장처럼 팩트에는 부합하는 내용인지를 검증하는 것은 선택 아닌 필수다.

여러 언론이 김준혁 후보의 ‘이대생 미군 성 상납’ 발언을 “역사적 사실”이라는 그의 주장만 담아 퍼다 나르고 있을 때, 여성신문은 ‘팩트체크’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여성신문은 지난 7일자 기사를 통해 “낙랑클럽은 고급 접대부 클럽”이라며 김 후보를 옹호하는 조상호 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의 발언을 반박했다. 조 부위원장이 근거로 삼는 미국 방첩대(CIC) 보고서를 영문학자와 함께 대조, 해당 주장에 대해 CIC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결론 지은 것을 밝혀냈다. 이슈를 이슈로 소비하지 않는 책임있는 언론의 자세였다.

‘성평등 공약 실종’에 맞서 구체적으로 물어야

정책 없는 선거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어김없이 각 정당들의 분야별 공약을 비교했다. 성평등 의제에 대해서도 정당들에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거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대표 공약들을 참고하거나, 혹은 여성단체가 보도자료로 배포한 내용을 보도하는 행태를 취했다. 여성 공약은 저출생 해법이 전부이거나(국민의힘), 성평등 실현이라는 대전제를 없애고 여러 부문의 하위 카테고리로 과제를 분산(민주당)해 지난 선거들에서보다 후퇴가 두드러졌다. 이런 사정이면 언론사 입장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성평등 공약 실종’이라는 헤드라인 외에 뽑아낼 ‘야마’가 없다.

결과적으로는 비동의간음죄, 차별금지법 등 도입이 시급하지만 정치권이 다루지 않는 문제를 부러 묻는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조직 내부에 이른바 젠더데스크, 젠더팀이 있는 경향신문‧한겨레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해당 쟁점들에 대한 현 시점 당론과 함께 이전의 흐름 정도가 언론사 정치부에서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젠더 전담 조직이 있는 언론사에서는 시민사회의 요구와 국제적 추세, 향후 과제까지 함께 기사에 담을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있다. 정치인의 입만 따라다니는 선거 보도에서, ‘플러스 알파’라는 행간을 담을 수 있는 힘이 여기에 있다.

▲ 뉴스타파 ‘총선 기획 3부작 2부 : 성평등 국회’ 보도 갈무리.

‘여성 과소대표’라는 개선되지 않는 현실을 따져 묻는 뉴스타파의 총선 기획 ‘성평등 국회’도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국회에 여자가 적으면 생기는 일’이라는 질문에 풍부한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답했다. 유튜브 영상물이라 훨씬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와닿는다는 장점도 있다.

선거 국면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젠더 보도란 이렇게 없던 질문을 던지는 것, 늘 하던 질문도 더욱 꼼꼼하게 하는 것, 근원적인 질문에 성실히 답하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 감정만 돋우는 막말 보도 대신 유권자들이 이런 보도들을 챙겨봐 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투표장에서의 심판도 더욱 엄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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