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부터 18일까지 ♡수학여행♡’.

교실을 이루는 모든 것이 10년 전, 그날에 멈춰 있었다. 4월 달력, 식단표, 청소당번까지 벽과 칠판 옆 게시판에 붙어 있는 종이들은 10년의 세월을 보여주는 듯 색이 바랬다. 멈춘 교실 시계는 ‘4시16분 44초’를 가리켰다. 경기 안산 단원구에 있는 ‘단원고 4.16기억교실’(기억교실)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교사들의 공간과 시간을 그대로 가져와 복원한 ‘기록물 저장소’다.

4.16민주시민교육원과 4.16기억저장소가 연 국제학술대회 ‘살아있는 아카이브 만들기:재난, 공간, 기록, 4.16 단원고 기억교실의 미래’에 참석한 미국, 일본, 캄보디아의 기록학자들이 12일 기억 교실을 찾았다. 국제 학술 대회는 기억 교실을 세계 학자들에게 알리며,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축적해 온 세월호 참사 관련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리기 위한 논의를 본격화하려 마련됐다.

기억교실을 찾은 외국 학자들은 희생된 아이들의 책상과 희생자들의 물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미국에서 온 사라 셍크 교수는 “기억교실을 본 것은 가장 감동적인 경험 중 하나”라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공포와, ‘지금’의 슬픔 사이 멈춰 있는 공간이다. 애도의 과정, 특히 집단적 기억에 대한 아카이브”라고 말했다.


실제 기억교실은 단원고의 창틀, 칠판, 청소도구함까지 그대로 가져와 구현했다. 수학여행 동의서나 아이들이 직접 수학여행 일정을 기록한 달력 등 훼손되기 쉬운 종이 자료는 4.16 기억교실 곁에 있는 수장고에 따로 두고, 이를 본뜬 물품을 전시해뒀다. 수장고에는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고 나서 수습된 희생자의 교복과 필기 노트 등을 보존 처리해 보관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기록물은 △희생자·생존자·단원고 기록물 △교실존치·이전·철거·복원 기록물 △구술자료 기록물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선 진정성, 독창성 및 대체 불가성, 세계적 중요성 등 요건이 필요하다. 4.16 기억저장소 쪽은 국가의 부재 가운데 참사 피해자 가족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쌓아둔 기록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지성 4.16기억저장소 소장은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지우고자 했다. 보존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인양 초기엔 폐기물 업체를 불렀을 정도”라며 “가족들이 방치돼 있던 기록물을 주워와서 보존 처리했다.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선 기억교실과 유사한 형태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례로 캄보디아의 ‘투올슬렝 학살 박물관’ 기록(2009년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이 소개되기도 했다. 1976~1979년 크메르루즈의 학살 당시 1만5천명 이상이 수감됐던 캄보디아의 한 고등학교를 재현한 공간이다. 사회적 비극을 재현한 공간과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4.16 기억교실과 비슷하다.

지난 2021년부터 세월호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 4.16기억저장소는 이번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체계적인 검토를 거쳐, 내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할 계획이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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