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시즌이다. 중학교 3학년인 딸은 다음달에 제주도로 2박3일 수학여행을 간다. 중간고사가 코앞이지만 딸 마음은 이미 제주도에 가 있다. 제주도에서 입을 옷, 제주도에서 바를 틴트 등 필요한 항목을 나열하며 시험 끝나는 대로 쇼핑부터 가자고 한다. 바로 일주일 후가 시험인데 문제집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달라고 했으면 이뻐서 업고 다녔으련만.

딸이 수학여행을 기대하는 이유는 ‘친구들’ 때문이다. ‘제주도’라서 좋은 게 아니라(제주도는 여러 번 다녀왔다) ‘친구들’하고 3일 동안 먹고 자고 놀 수 있어서 흥분해 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고1 수학여행으로 경주 불국사에 갔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건 지명이 아니다. 친구들하고 프린터기만 한 카세트 플레이어를 어깨에 올린 채 마이클 잭슨의 ‘블랙 오어 화이트’(Black or White)를 들으며 폼 잡고 걸어다녔던 것, 밤에는 트위스트 음악에 맞춰 열심히 춤췄던 것, 그런 것들이 수학여행의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딸 친구 중에 수학여행을 안 가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경제적인 이유나 건강상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부모가 허락하지 않아서 못 간다고 했다. 처음엔 조르고 빌던 친구도 꿈쩍하지 않는 부모 앞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해 버렸다고.

이렇게 보면 비장애 학생의 수학여행 불참 사유는 주로 가정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반면 장애 학생의 수학여행 불참 사유는 주로 학교로 인해 발생한다.

지난 3월 경기도 시흥의 한 고등학교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특수교육 대상자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데 해당 학생 이동에 필요한 경비를 수익자 부담으로 처리해 장애 학생의 부모가 수학여행비 외에 백여만원의 수익자 부담금을 따로 더 냈다고 한다. 해당 학생의 부모는 백만원을 더 낼 만한 경제적 여력이 있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의 가정이었다면 어땠을까. 포기했어야 할 것이다. 실제 비슷한 이유로 수학여행을 포기하는 장애 학생은 생각보다 많다.

보통 교육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학교가 부담한다. 수학여행도 교육과정의 일환이다. 그런데 수학여행에서 장애 학생의 이동 편의를 위한 예산은 왜 당연한 교육예산이 아닌 것일까. 장애 학생도 엄연한 학생의 일원으로 생각한다면, 장애 학생의 교외 활동을 위한 추가 비용은 학교 예산에서 마련해야 옳다. 그래야 교육활동에서 배제되는 학생이 발생하지 않는다.

수학여행이 의미 있는 건 세상에서 친구가 가장 좋은 학령기 시절에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기에 그렇다. 그 나이에 가는 수학여행은 그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개인이 가고 싶지 않아 불참한다면 얼마든지 존중하겠지만, 당사자는 가고 싶은데 어른들에 의해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건 부당하다고까지 느껴진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의 수학여행은 지켜줬으면 좋겠다. 평생에 몇 번 있지도 않은 경험, 그조차 지켜줄 수 없다면 어른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류승연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작가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