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코 이케무라 작가(아래 사진)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귀 없는 토끼들이 태어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제작한 ‘토끼 관음’. [사진 헤레디움]

토끼의 귀를 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서 있다.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듯 두 손을 모으고, 아래엔 둥그렇게 펼쳐진 치마를 입고 있다. 높이가 3.4m에 이르는 이 동상의 제목은 ‘토끼 관음’.

일본 출신의 예술가 레이코 이케무라(73)가 만들었다. 이케무라는 일본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스위스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현재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1990년부터 2016년까지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 센터, 스위스 바젤 미술관, 일본 도쿄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국경을 뛰어넘어 쌓아온 독특한 이력이 이질적인 여러 요소를 한데 융합해 표현한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케무라의 개인전 ‘수평선 위의 빛’이 대전의 복합문화공간 헤레디움에서 8월 4일까지 열린다. 회화부터 조각, 설치 작품까지 지난 10년간의 작업 3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2층 전시장에 배치된 유리조각 작업 역시 ‘토끼 관음’처럼 인간과 동물, 동물과 자연이 기묘하게 융합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토끼 관음’이 만들어진 배경도 특별하다.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케무라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귀 없이 태어난 토끼들에 관한 기사를 읽고 나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는 모습은 상처 받은 세계에 바치는 그의 ‘애도’이고, 풍성한 치마는 아픈 세상을 품는 하나의 피난처다.

레이코 이케무라 작가

이케무라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모든 자연의 피조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고, 서로 소통하고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며 “‘토끼 관음’은 불교의 관음으로도, 서양 기독교의 마돈나(성모 마리아)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것은 하나의 조각이자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건축물”이라며 “안에 들어가면 치마에 숭숭 뚫린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고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인간과 자연, 동물이 연결돼 있다는 그의 생각은 삼베 캔버스에 오일로 그린 회화 작업에도 드러나 있다. 이를테면 회화 ‘마운티 레이크’는 언뜻 산수화 같아 보이지만 그림 속 식물이나 바위는 인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동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캔버스 안에 경계가 흐릿하게 서로 스며들듯 하나로 그려진 형상이 바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다. 함선재 헤레디움 관장은 “이케무라의 모든 작업에는 작가의 애니미즘(정령 숭배) 세계관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일본에서 태어난 작가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 헤레디움에서 여는 전시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헤레디움은 1922년 세워진 옛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복원한 건물이다. 이케무라는 “이곳의 역사를 전해 들어 알고 있다”면서 “과거의 뼈아픈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 세대가 이것을 잘 다듬어 문화로 미래를 풍성하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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