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세이아》 2 -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어떤 인물일까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들은 그를 ‘인간 중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말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자 오디세우스, 《오디세이아》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처지에 맞게 욕심을 조절할 줄 아는 지혜

오디세우스 역시 처음에는 당대 최고의 미녀 헬레네에게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구혼자와 비교하여 자신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물러납니다. 그리고 차선으로 그녀의 사촌 페넬로페에게 접근합니다.

오디세우스의 미덕은 당시의 신과 영웅들처럼 본능에 충실하지만, 망가지기 전에 이내 자신의 처지에 맞게 욕심을 조절할 줄 안다는 겁니다. 마인드컨트롤이 가능한, 당시로서는 매우 독특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혜로운 자의 명예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페넬로페 때문에 귀향길 10년 내내 의심과 질투로 가슴 졸릴 줄은 그 자신도 몰랐습니다. 제 발등을 찍은 첫 번째 지혜가 되었습니다.

2. 얽힌 실타래를 단칼에 풀어내는 묘수를 짤 줄 아는 지혜

페넬로페를 아내로 얻기 위해 오디세우스는 그녀의 큰아버지인 헬레네의 아버지 문제를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즉, 헬레네의 수많은 구혼자 중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보복이 두려웠던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페넬로페를 얻는 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오디세우스는 헬레네의 정혼자를 결정하기에 앞서 모든 구혼자에게 ‘누가 헬레네의 남편이 되더라도 그 권리를 인정하고 그 부부를 지켜주겠다.’는 서약부터 받아내라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참, 기막힌 묘수였습니다.

그래서 페넬로페를 얻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헬레네 납치 사건이 터지자 ‘헬레네 부부를 지켜주겠다.’는 바로 그 서약이 근거가 되어 그리스의 모든 구혼자에게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그 또한 참전의 화근이 됩니다. 이로 인해 제 발등까지 찍을 줄 몰랐던 두 번째 지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혼하여 아들도 낳고, 예쁜 아내와 알콩달콩 신혼 생활 1년 만에 트로이전쟁이 터지고 참전을 요구받은 겁니다. 사실 오디세우스는 헬레네의 구혼자도 아니었고, 그래서 서약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전해야 할 의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혜를 눈여겨보았던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의 요청으로 거절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오디세우스의 선택은 당나귀가 끄는 쟁기로 밭을 갈고 밭에 소금까지 뿌리며 미치광이 행세하는 코스프레였습니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세계 최초의 병역기피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의 잔머리를 눈치챈 메넬라오스의 사촌이 쟁기 앞에 슬쩍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내려놓자 깜짝 놀라 쟁기를 재빨리 옆으로 치웁니다. ‘아차!’ 코스프레가 들통나는 바람에 오디세우스는 하는 수 없이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전선에 끌려 나갑니다. 그리고 전쟁에 나가 그 메넬라오스의 사촌을 모함하여 사지로 몰아넣습니다. 잔머리에 밝은 자답게 뒤끝 작렬합니다.

3. 현실을 회피했으나 일단 현실로 들어가면 누구보다 발 빠르게 현실에 적응하는 지혜

또 병역을 기피했으나 일단 동원되자 연합군 지도자 아가멤논의 일등 책사로 활약합니다. 발 빠른 현실 적응 능력, 지혜로운 자다운 처신입니다. 그는 용맹이 뛰어나지 못하고 무술에도 능하지 못한 데다 체구마저 왜소한 터라 전선이 아닌 막사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책략에 관여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 임무가 바로 아킬레우스를 참전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죽는다는 예언 때문에 극성스런 어머니 테티스는 그를 여자로 변장시켜 시녀들 틈에 숨겨두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화력 아킬레우스도 사실은 이렇게 병역기피자였던 겁니다. 그러니 오디세우스에 이은 세계 두 번째 병역기피자인 셈입니다.

4. 여신의 마법도 풀어내는 간특한 지혜

여신의 술수이니 누구도 그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지혜로운 자, 오디세우스가 나서서 시녀들 앞에 투구와 칼을 던집니다. 모든 시녀가 놀라 피하는데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만이 시녀로 변장했지만, 본능적으로 그 투구와 칼을 낚아챕니다. 논리적으로 밝혀낼 수 없을 때는 본능을 자극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오디세우스의 간특한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5.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위험한 지혜

또 아킬레우스가 참전한 뒤 아가멤논에게 삐져서, 《일리아스》에 나오는 대로 전선을 이탈했을 때도 그를 설득하러 간 자는 지혜로운 자, 오디세우스였습니다. 아킬레우스가 끝내 전선 복귀를 거부하자 그의 친구이자 핵심 측근인 파트로클로스를 이용하여 쿠션을 넣습니다. 결국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를 대신하여 전선에 나서 죽음에 이르고, 이에 아킬레우스가 분노하여 스스로 전선의 선두에 나섭니다. 이 전체 시나리오를 기획한 자 역시 지혜로운 자 오디세우스라는 설이 있습니다. 목적과 수단이 앞뒤가 바뀌면서 기획의 정당성이 왜곡되기도 합니다. 점점 오디세우스의 지혜가 위험해지기 시작합니다.
 

리코메데스 딸들 사이에서 아킬레우스를 발견한 오디세우스, 루이 고피에

아킬레우스는 예언대로 전쟁 막바지에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쏜 아폴론의 화살이 그의 발뒤꿈치를 관통하여 죽음에 이릅니다. 어려서부터 철딱서니 없이 굴다가 나이 들어서는 찌질이로 변신한 트로이 왕자 파리스, 그러나 아이돌 뺨치는 꽃미남 얼굴 하나로 《그리스 로마 신화》 대표적인 트러블 메이커로 부상합니다.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납치하여 트로이전쟁을 일으키더니 불사조라 불리는 전사 아킬레우스까지 화살 하나로 쓰러뜨립니다. 타고난 연예인 병 환자, 하는 짓마다 관종인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6. 사람의 마음을 읽고 행동을 끌어내는, 지혜의 경지를 넘어섰다

트로이의 헥토르가 죽었지만, 그리스의 아킬레우스까지 죽자 그리스는 트로이 성을 끝내 함락하지 못한 채 공방을 계속 이어갑니다. 이때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를 기획하여 트로이 성을 무너뜨리고 트로이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자가 바로 지혜로운 자, 오디세우스입니다. 몇 수 앞까지 내다보는 지략의 경지, 마침내 인간의 지혜를 넘어섭니다.

-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 (가디언, 2022)
 

최봉수 칼럼니스트

최봉수

김영사 편집장
중앙 M&B 전략기획실장
웅진씽크빅 대표이사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프린스턴 리뷰 아시아 총괄대표
주요 저서 <출판기획의 테크닉>(1997), <인사이트>(2013),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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