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네이버와 일본 야후의 일본합작법인 라인야후 사태를 보며, 예전에 필자가 모 잡지에 썼던 칼럼 <‘머구리’ 기술 고향은 일본일까 조선일까?>(시사IN 2019년 10월 18일자)가 불현듯 떠올랐다. 라인야후 사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술을 둘러싼 패권 경쟁과는 조금 결을 달리한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라인야후의 높은 일본 시장 지배력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안이 잠재해 있다.

라인야후는 원칙적으로 한국 자본과 일본 자본이 절반씩 들어간 합작기업이지만, 경영진이 모두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일본 기업의 영향력이 더 큰 기업이다. 심지어 라인은 한국 시장 점유율이 매우 낮아 사실상 일본 사회에 더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라인을 사용하며 라인의 고향이 한국이라는 점을 떠올린다. 필자는 이점이, 다시 말해 기술에도 고향이 있다는 점이 분명 일본 정부를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에 근간해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지난 20년간 기술과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고 이야기되어 왔다. 기술과 자본은 중립적이며 냉혹한 계산에 따라 움직일 뿐이기에 우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대를 뒤돌아보면, 냉혹한 자본과 기술만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였는지 알 수 있다.

예전에 쓴 칼럼에서 필자는 한국에서 흔히 “머구리”라고 부르는 헬멧식 잠수기 어업 기술의 전파 과정에 대해 다루었다. ‘머구리’는 ‘잠수’를 의미하는 일본어 “潜り”(모구리)에서 유래했다. 이 때문인지 부산과 전남 여수에 <잠수기수산업협동조합>이 있고 많은 한국인 잠수부가 활약하고 있지만, 누구나 잠수기 어업 기술이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일본 규슈 사가현 지방에서는 이곳이 조선에서 잠수기 어업을 최초로 도입하였기 때문에 일본 잠수기 어업의 발상지라고 선전하고 있다.
 

1970년_한국 부산_후지모토 다쿠미 촬영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일본 사가현 어민은 직접 키조개 조업은 하지 않았다. 다만, 조업 시기에 맞춰 들어온 외지 잠수부들이 이곳 주민에게 어장의 권리를 구매해 조업하고 있다. 외지 잠수부 중에는 일본인 잠수부도 있었지만, 전남 출신 조선인 잠수부가 많았다. 이후 점차 현지 어민들은 어깨 넘어 모방에 모방을 거쳐 잠수기 기술을 익히는 데 성공했고, 조선인 잠수부는 더 이상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다라쵸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잠수부를 배출하고 있으며, 이들은 갯벌이 넓게 발달한 얕은 바다인 아리아케해 연안의 키조개 어업뿐만 아니라 잠수 공사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본래 잠수기는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본으로 들어와 1870년대부터 어업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내 조선으로 전파되어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러다 1930년대 조선을 통해 잠수기 기술이 없던 일본 규슈 북서부 지역으로 다시 전파되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일본과 조선이 어장이 통합되고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었던 제국의 시대였기에 가능했다. 어구뿐 아니라 숙련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잠수기 어업의 경우에는 자연환경의 유사성이 기술 전파의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지구화 시대인 지금 수 많은 기술들이 지리적 근접성을 불문하고 자본과 기술이 투자되는 곳이면 어디든, 또 다른 나라 제품을 수입해 조립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고 있다. 그런데 기술은 전파되지만,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기술이 떠나온 ‘고향’을 잊지 않는다. 한국 어촌에 가면, 나이든 어민이 자신이 사용하는 기술이 일본에서 왔다는 점, 그래서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기술에는 여전히 고향이 남아있다.

또 한 가지 사례로, 남해안에 가면 “권현망”이라고 부르는 멸치 어법(漁法)이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어법은 여러 번 개량을 거쳐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들어온 “권현망”과 전혀 상이하게 변했다. 그러나 지금 어민들은 이 어법을 “권현망”이라고 부르며 일본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다. 일본 기술이 변용되어 완전히 새롭게 정착하더라도 기술의 고향은 잊히지 않는 것이다.

사실 잠수기 기술도 저 멀리 유럽에서 시작되어 일본, 조선, 다시 일본을 넘어 이주해 왔다. 아마 유럽에서 이 기술의 고향은 또 다를지 모른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가 사하라 사막과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태평양을 건너 전 세계로 퍼졌다. 그러나 대개 인간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바로 앞서 지나온 곳을 고향이라고 기억하고 살고 있다.

기술에도 인간과 같은 고향이 있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은 흔히 회자되는 “독일차가 OOO 하다든가” 혹은 “일본차는 OOO 하다든가” 하는 이야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증명될 수 있는 사실이거나 기술 자체에 대한 객관적 분석 결과를 지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기술의 전파 이면에 실재하는 인간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어떤 기술 전파도 전달하고 수용하는 ‘인간들’ 없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는 기술 전파가 인간 의미 밖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술 연구가 간과하거나 주목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오창현 목포대학교 조교수

오창현

문화인류학자이자 한국민속학자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전문위원
한국문화인류학회, 한국민속학회, 일본민속학회 회원
한국과 일본의 생업과 기술, 농어촌 공동체 문화를 연구해 왔다. 한국과 일본의 어업기술과 해산물 소비문화를 중심으로 한국의 근대적 특질과 물질문명의 전개 과정을 규명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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