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전 지붕 보수 공사 중 상량묵서 확인…내부 천장에서는 옛 단청도

보물로 지정돼 있는 ‘서울 문묘 및 성균관’의 핵심 건물인 대성전에서 1602년 건립 당시의 기록물인 상량묵서가 발견됐다. 상량묵서(사진 위)와 상량묵서가 써 있는 위치 표시. 국가유산청 제공

보물로 지정돼 있는 ‘서울 문묘 및 성균관’의 핵심 건축물인 대성전에서 대성전 건립 당시(1602년, 선조 35)에 써놓은 상량묵서가 발견됐다.

상량묵서는 건축 과정의 간략한 정보를 한옥 건축물 최상부이자 용마루 바로 아래에 놓이는 부재인 종도리에 먹글씨로 쓴 기록을 말한다. 또 대성전 내부 천장에서는 1704년(숙종 30)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단청도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지붕 보수공사가 진행 중인 대성전 내부에서 1602년에 기록된 상량묵서, 옛 단청 등을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

상량묵서의 내용은 ‘萬曆 二十九年 十月二十六日 上樑木手邊首 金順億 金夢松 姜香’(만력 이십구년시월이십육일 상량목수편수 김순억 김몽송 강향)이다. 1602년(만력 29년) 10월 26일에 종도리를 올리는 공사를 했으며(상량), 목수는 김순억 김몽송 강향이라는 의미다.

‘서울 문묘 및 성균관’(보물)의 대성전 건물. 국가유산청 제공

대성전은 유교의 성인인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의 으뜸건물(정전)이다. 해마다 공자를 추모하는 제사인 ‘석전대제’(국가무형유산)가 거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문묘는 원래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세웠으나 정종 2년(1400)에 화재로 불에 타 태종 7년(1407)에 다시 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또 소실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진왜란으로 없어진 대성전을 ‘1602년 7월에 다시 짓는 공사를 끝냈다’는 내용이 있다. 이와 관련,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발견된 상량묵서와 <조선왕조실록> 두 기록 사이에 몇 개월의 오차가 있고, 당대 국가적 건축공사를 담당한 목수들인데 아직까지 그 이름을 다른 기록에서는 확인할 수 없어 향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부터 지붕 보수공사가 진행 중인 대성전은 그동안 1869년, 1971년, 1973년, 1991년, 2001년 등 수차례에 걸쳐 수리 공사가 이뤄졌으나 상량묵서 발견과 관련한 기록은 없다.

대성전 내부에서 조선시대의 단청(① 부분)이 처음 확인됐다. ② 표시 부분은 현대에 보수된 단청이다. 국가유산청 제공

대성전 천장 내부에서는 단청도 발견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대성전에 박쥐가 살면서 내부를 더럽히자 이를 막기위해 숙종 30년(1704년)에 천장을 평평하게 만든 시설(반자)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라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발견된 단청은 1704년 이전에 시공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앞으로 전통 단청 안료와 무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문묘 및 성균관’은 여러 건물들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대성전과 명륜당, 대성전 부속 건물인 동무·서무 건물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돼 있다. ‘문묘 및 성균관’은 유교에서 성인으로 모시는 공자와 주요 제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인 대성전 구역(문묘), 조선시대 인재양성을 위한 유학 교육기관인 명륜당 구역(성균관)으로 크게 나뉜다.

‘서울 문묘 및 성균관’의 명륜당. 국가유산청 제공

문묘와 성균관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건물이 각각 대성전과 명륜당이다. 대성전은 1602년에 세워졌으며, 공자 제자와 중국·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건물인 동무·서무는 1603~1604년, 대성전 뒤편에 자리한 명륜당은 1606년에 지은 건물이다. 국가유산청은 “대성전 보수공사는 내년 2월 마무리될 예정”이라며 “매주 목요일 오후 사전예약을 통해 수리현장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균관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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