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김태형 연출 인터뷰

“즉흥성이 주는 생동감과 삶의 진실”

뮤지컬 관습에 대한 연구이자 풍자

뮤지컬· 연극 연출가 김태형씨가 7월 30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7.30 /서성일 선임기자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이란 제목을 들었을 때 사실이 아니라 은유라고 생각했다. 막상 관람하며 관객이 소리친 단어로 극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의구심이 남았다. 예를 들어 옛 유리공장을 리노베이션해 문을 연 서울 서대문구 연남장 캬바레에서 열린 지난달 18일 공연은 다음과 같았다. 공연이 시작하면 배우 4명이 무대에 올라 관객에게 말을 건다. 관객이 테이블 위의 에비앙 생수를 언급하자 주인공 이름이 에비앙이 됐다. 주인공의 꿈이 무엇이면 좋을지 물어보자 누군가가 ‘탭댄스 아이돌’이라고 외쳤고, 실제 뮤지컬은 주인공이 전무후무한 탭댄스 아이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서사로 흘러갔다. 공연 제목도 관객이 말한대로 탭댄스의 소리를 흉내낸 ‘땃따라따다 읏따다’로 정해졌다. 공연 중 목이 마른 배우는 관객의 술을 빼앗아 마시기도 했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김태형 연출은 2013년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즉흥 뮤지컬’을 처음 봤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즉흥 연기’를 배우며 “주어진 대본대로 할 때보다 더 생동감 있고 강렬하게 삶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느낀 경험이 떠올랐다. 한국에 돌아와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2017년 초연부터 ‘즉흥 뮤지컬’을 내세웠지만, 모든 요소가 즉흥적인 것은 아니었다. 연기는 즉흥이되, 노래는 미리 써뒀고 일부 가사만 현장에서 붙였다. 초연 이후 영국의 즉흥 뮤지컬 배우와 음악감독을 초빙해 워크숍을 했는데, 알고보니 그들은 음악도 현장에서 만든다고 했다. ‘그게 되나’ 싶어서 연습해 봤는데 진짜 됐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이후 사전 제작 요소를 거의 없앤 채 순수한 ‘즉흥 뮤지컬’의 형태를 갖춰나갔다.

첫번째 비결은 의외로 ‘아이 컨택’, 다시 말해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상대 배우를 더 열심히 보고,귀기울이고 반응하며 어떤 결과가 나와도 비난하지 않기”가 핵심이다. 모든 것이 미정인 오늘 밤 공연이 잘될 수 있을까 배우와 연출 모두 두렵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이 중요하다. 매 공연의 엔딩곡 가사는 이렇다. “오늘 오신 여러분의 인생은 어쩌면 오늘 만든 이야기처럼 알 수 없어도, 어떻게든 흘러간 이 자리에 모여 하루하루 여기서 함께 만들어내지. 좀 이상하면 어때. 좀 황당하면 어때. 괜찮아. 오늘 만든 이야기 다시 못봐. 다시 오지 않을 우리 인생처럼.”

서울 서대문구 연남장 캬바레에서 공연중인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공간 특성상 관객은 자유로이 술과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본다. 사진 촬영이나 대화도 자유롭다. 공연은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아이엠컬처 제공

2024년 7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남장 캬바레에서 공연한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주요 키워드.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 꿈 등이 모두 이날 즉석에서 정해졌다. 백승찬 기자

작품의 의도와 효과는 양가적이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뮤지컬 서사와 음악의 기초를 철저히 따른다. 예를 들어 뮤지컬 시작 15분 쯤 후에 나온다고 해서 ‘15분송’ 혹은 주인공이 소망을 말한다고 해서 ‘아이 위시 넘버’라고 부르는 노래가 들어간다. 이는 공연을 탄탄하고 안정적으로 끌고 가려는 노력이기도 하고, 뮤지컬의 관습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시련에 빠져 좌절하고 있을 때 연출이 친구 혹은 부모의 역할로 “지치지 말고 나아가렴”이라고 내레이션을 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울컥한 감동을 줄 때도 있고 키치한 효과를 낼 때도 있다.

물론 즉흥성과 자유로움이 작품의 윤리까지 담보하는 건 아니다. 김태형은 “검열해 말하다 보면 너무 정제돼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서도 혐오, 차별 같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면 안된다”며 “공연 중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불편한 워딩이 나오면 연출이 개입한다. 그건 공연을 넘어 삶을 흥미있게 만드는 노하우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김태형은 촉망 받는 과학도였다. 과학고를 나와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과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대학 교양 강의 시간에 브레히트에 대해 듣고 특히 충격을 받았다. “연극은 유흥이나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도구”라는 브레히트의 주장 때문이었다. 김태형은 카이스트 자퇴를 결심하며 아버지에게 “자본주의의 개가 되기 싫기 때문에 연극을 할 것”이라는 장문의 편지를 썼고, 아버지는 “예술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개”라고 답장을 썼다. 지금 김태형의 입장은 무엇일까.

“남의 돈으로 공연하다보니, 큰 수익은 못내더라도 적어도 다음 가능성을 볼 수는 있게 해야죠. 자본의 개라면 개고, 자본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이고…. 좋은 작품과 수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은 늘 고민입니다. 확실한 것은 관객이 창작진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입니다. 돈을 내고 공연을 보는 관객의 선택은 오랜 시간 공연을 만드는 제작진의 선택보다 발빠르고 스마트하거든요. 그 선택을 믿고 존중합니다.”

김태형은 엄청난 다작의 연출가다. 어떤 해에는 신작과 재공연작을 포함해 10편을 올린 적도 있다. 올해만 해도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과 <천 개의 파랑> 등 이미 다섯 편을 선보였고,향후 선보일 작품 2편을 동시에 연습중이다. 김태형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공연을 만들어 올리는 게 제일 재밌다”고 말했다.

뮤지컬·연극 연출가 김태형씨가 30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7.30 /서성일 선임기자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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