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재연된 워너 연출의 ‘오텔로’. 붉고 높은 수직벽은 오텔로의 심리를 상징한다. [사진 로열오페라하우스 ]

서울 예술의전당은 주목할 만한 런던 로열오페라 프로덕션을 여러 차례 국내에 소개해왔다. ‘돈 조반니’(2006년), ‘피가로의 결혼’(2009년), ‘노르마’(2023) 등이다.

이달 18일부터 25일까지는 키스 워너 프로덕션의 ‘오텔로’를 오페라극장 무대에 5회 올린다. 2017년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의 오텔로 배역 데뷔작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이 프로덕션은 영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오페라 연출가의 한 사람인 워너의 빛과 어둠을 대비시킨 강렬한 무대와 섬세한 연출로 깊은 인상을 남겼고, 2022년 로열 오페라에서 재연도 이루어졌다.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바티스타 지랄디(1504∼1573)의 ‘에카토미티’(1566)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참고해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Othello, the Moor of Venice)’를 썼다. 셰익스피어의 영어식 표기 ‘오셀로’는 베르디 오페라에서 원래의 이탈리아어 발음과 철자대로 ‘오텔로’가 된다.

베르디의 ‘오텔로’가 밀라노에서 초연된 1887년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극이 유럽 오페라 계를 장악한 시기였다. 성악 선율 중심의 이탈리아 오페라보다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극적 효과를 창출하는 바그너식 독일 음악극이 대세였다. 이에 자극 받은 ‘오텔로’ 대본작가이자 오페라 ‘메피스토펠레’의 작곡가이기도 한 아리고 보이토는 ‘아이다’ 초연 후 16년간 후속 오페라를 발표하지 않은 베르디를 찾아가 끈질긴 설득으로 ‘오텔로’를 작곡하게 만들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불협화음과 함께 극적 긴장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 현대적 베르디에 온 세계는 환호했다.

로열오페라 ‘오텔로’ 프로덕션 첫 공연 후 영국 가디언의 리뷰는 이 프로덕션이 “공적인 페르소나와 사적인 페르소나가 심각하게 다른” 오텔로라는 인물의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냈음을 보여준다. 무대가 열리자마자 귀를 찢는 요란한 폭풍우의 음악이 관객을 놀라게 한 뒤 등장하는 오텔로는 “카리스마 넘치는 아웃사이더”지만, 1막 후반 키프로스의 고요한 바닷가에서 데스데모나와 함께 노래하는 서정적인 이중창에서 오텔로는 아내를 향한 한없는 사랑과 숭배의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간교한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의심의 고통으로 자신을 파괴해가는 오텔로의 모습은 지독하게 내향적이며 진정한 자기편이 아무도 없는 소외된 권력자의 내면을 드러낸다. 연출가 워너는 “베르디 비극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매혹적인 주인공”이라고 오텔로를 칭했다.

연출가 워너는 오텔로의 심리적 불안을 검은색 무대와 높은 벽의 수직선들로 표현하는데, 그 벽의 이미지는 시간이 갈수록 조각조각으로 분열된다. 무대는 상징주의적이며 미니멀한 편이지만 르네상스 스타일에 현대성을 가미한 세련되고 아름다운 의상들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예술의전당 공연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뉴욕 메트, 런던 로열오페라 등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에서 활약 중인 이용훈이 2021년 시드니에서 처음 도전한 ‘테너의 에베레스트’ 오텔로 역을 노래한다. 더블캐스팅된 1983년생 루마니아 테너 테오도르 일린카이 역시 매혹적이다. 존 비커스나 플라시도 도밍고의 원숙한 오텔로 대신 일찍 출세한 패기 넘치는 용장의 면모를 힘찬 미성으로 들려줄 예정이다. 이아고 역에 이탈리아 바리톤 마르코 브라토냐와 조지아 바리톤 니콜로즈 라그빌라바, 데스데모나 역에 아르메니아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와 홍주영이 출연한다.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라 트라비아타’를 지휘한 거장 카를로 리치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이용숙=오페라 평론가. 공연예술학 박사. 서울대 강사. 국립오페라단 운영자문위원,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제6회 한독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저서 『오페라, 행복한 중독』 『바그너의 죽음과 부활』 등.

이용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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