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참여불교 대가 조앤 핼리팩스

임종 돌봄 의료 선구자

‘죽음과 함께하는 삶’ 개발

명상 통해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연민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어

·

숭산 스님 제자로 ‘한국과 인연’

사형수·히말라야 고산지대 의료지원 등

소외된 자 돕고 사회참여 앞장서

의료 인류학자이자 선스승인 조앤 핼리팩스가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1960년대, 조앤 핼리팩스는 반전운동을 벌이고 인종차별·성차별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을 벌이던 혈기왕성하고 이상주의적인 젊은이었다. 그는 반전운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베트남에서 추방당한 틱낫한 스님을 만나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듣게 된다.

“우리 나라(미국)가 그의 나라(베트남)를 폭격하고 있었죠.”

틱낫한 스님과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불교에 귀의한 그는 숭산 스님과 틱낫한 스님 밑에서 오랫동안 수행하기도 했다. 뉴멕시코주 산타페의 우파야 선 센터의 설립자이자 주지인 핼리팩스는 임종 돌봄의료 분야의 선구자로 불린다. 50년 넘게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이들을 돌보는 의료진·돌봄자들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 ‘죽음과 함께하는 삶(Being with Dying)’을 창설했다.

열정적 사회운동가에서 불교의 선스승이 된 이유에 대해 묻자 핼리팩스는 답한다. “나는 멈추지 않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운동을 해왔습니다. 명상하고 수행하면서도 사회운동·환경운동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죽기 전까지 미래 세대를 위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82세의 고령이지만 핼리팩스의 목소리는 분명하고, 메시지는 열정적이고 명확했다.

‘미국 참여불교의 대가’로 불리는 핼리팩스는 의료인류학자이기도 하다. 컬럼비아대학 의대 교수를 지냈고 하버드 신학교·의과대학 등에서 죽음에 관한 교육을 해왔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오는 27일부터 개최하는 국제선명상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할리팩스를 지난 2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의료 인류학자이자 선스승인 조앤 핼리팩스가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명상이 죽음 앞에 선 이들을 어떻게 구할까

초고령화 사회를 목전에 둔 한국에서 돌봄은 중요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돌봄에 지쳐 아픈 가족을 살해하는 ‘간병살인’도 벌어진다. 간병하는 이들은 쉽게 소진되고, 이는 아픈 이들에 대한 학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핼리팩스가 창설한 ‘죽음과 함께하는 삶’은 임종을 앞둔 이와,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이다.

“제 할머니는 힘겨운 죽음을 맞이하셨어요. 할머니가 받은 돌봄은 열악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린시절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오랫동안 아팠기 때문에 내면의 삶에 대해서 일찍 발견할 수 있었죠. 또 미국의 대형 병원에서 일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지켜봤어요. 죽어가는 사람들은 병원에서 가장 주변화된 존재였죠. 이 경험을 통해 죽어가는 분들이 어떤 돌봄을 받아야하는지 성찰하게 됐고,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이나 가족들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죠. 1990년대 미국에선 에이즈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어요. 그때 ‘죽음과 함께하는 삶’을 개발하게 됐어요.”

명상이 어떻게 죽음 앞에 선 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그가 개발한 명상 프로그램은 ‘모름’ ‘지켜보기’ ‘연민에 가득 찬 행동’으로 이뤄져 있다. 선입견 없이(모름) 고통에 처한 이를 지켜보는 수행을 통해 연민에 찬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상은 자신의 정신적·신체적 경험을 바라보는데 익숙해지게 합니다. 이를 통해 돌봄자들이 죽어가는 이들을 보면서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고 고통을 직시하고 함께 헤쳐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연민과 자비가 일깨워지는 거죠.”

그는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경험은 삶의 무상함을 통찰하게 한다. 삶에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에 관한 진실을 볼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이타심, 공감 등은 쉽게 병적인 이타심이나 공감 스트레스로 변질되며, 선한 의도로 남을 돕고자 하는 이들을 소진시키기도 한다. 핼리팩스는 <연민이 어떻게 삶을 고통에서 구하는가>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연민 또는 자비로 번역되는 ‘컴패션(compassion)’을 강조한다. “

“자비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의 안녕을 염려하는 능력입니다. 이를 위해선 안정적인 상태가 필요합니다. 명상을 통해 고통을 보면서도 피하지 않는 능력, 고통의 진실을 깊이 보면서 고통받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어요.”

1979년 숭산 스님과 함께한 조앤 핼리팩스. 위키피디아

숭산 스님 제자로 11년간 수행하기도

핼리팩스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75년 숭산 스님을 만나 11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숭산 스님에 대해 “활력과 에너지가 넘치고 재미있는 분이셨다. 동시에 매우 까다로운 스승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틱낫한 스님과 함께 10년을 수행한 후, 미국의 저명한 선스승 버니 글래스만과 함께 20년 동안 수행한다. 글래스만은 일본의 불교 종파인 조동종의 승려 마에즈미의 가르침을 받았다. 할리팩스는 “한국, 베트남, 일본에 저의 수행의 뿌리가 있다. 서로 좋아하지 않는 나라 세 나라에 뿌리를 둔 셈이어서 때론 제가 세 나라의 친선대사가 된 것처럼 겸허하게 느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사회 참여’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다. 핼리팩스가 설립한 우파야 선 센터는 사형수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노숙자를 돕고, 히말라야 고산지에 의료센터를 설립해 소외된 이들을 돕는다. 핼리팩스는 “사회참여 불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돕는 것과 사회·정치적 문제에 이슈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명상 깊어지면 타인을 위한 자비심 일어나

현대사회에 명상은 개인의 ‘마음의 평화’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각광받기도 한다. 핼리팩스는 명상의 궁극적 목적이 “타인에게 이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명상의 패러독스’를 언급한다.

“더 좋은 사람이 되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 명상하는 것은 선수행의 정신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명상은 몸과 마음에 부정할 수 없는 이점을 줍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평안을 위해 명상을 시작했을지라도, 수행이 깊어지면 점점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염려하고 이로운 존재가 되겠다는 마음이 함께 일어납니다.”

의료 인류학자이자 선스승인 조앤 핼리팩스가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경제불평등, 기후변화 ‘다중위기’···세상을 변화시킬 지혜가 필요

조계종이 오는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국제선명상대회를 갖고 보급하고자 하는 ‘5분 명상’에 대해서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 디지털기기의 일상화로 사람들이 주의력을 기울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에 짧은 순간 명상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며 “한 번의 들숨과 날숨에 주의를 온전히 기울일 때 뇌의 신경계가 바뀐다. 그것은 기적과 같다”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복합적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수퍼리치와 빈곤층의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전쟁, 환경파괴, 기후변화 등으로 지구 전체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고통을 우회하기 위해 명상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후손, 미래 세대를 위해 진정 무엇이 가치있는지 생각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합니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