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문학상은 한강 작가의 수상이기도 하지만 한국문학과 번역의 수상이고 한국 예술문화의 수상이기도 하다. 예술문화의 핵심이자 원천인 문학이 세계적 현상이 된 K문화의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다.

한 시대와 집단의 삶과 정신의 결정체인 문학작품이 언어와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한 공동체 문화의 정수가 가장 온전하고 수평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번역을 거쳐야 한다. 인식론적 공간과 공간이 만나 교류하는 것, 이것이 프란츠 카프카가 말하는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는 도끼의 역할인데 그 놀라운 이적을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번역은 수많은 차이와 어려움을 넘어서는 일이다. 언어의 등가성은 물론이고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에 사회·역사·문화적인 거리가 멀수록 어려움은 가중되고 후발국이나 주변국 언어일수록 더 지난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이번 수상은 번역의 중요성과 힘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여기에는 1992년 교보생명이 설립한 대산문화재단과 1995년 정부가 만든 한국문학번역원, 두 기관의 힘이 절대적이다. 정책적인 한국문학 번역지원 사업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해외에서 출판된 한국문학 작품은 3000종 정도인데 이 두 기관이 2600여종을 지원했다.

질적으로도 세계인이 함께 읽는 한국문학을 만드는 데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 1990년대 초까지 계속되어 오던 외국어를 전공한 한국인 교수 중심의 1세대 번역가 시대를 넘어서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인과 한국어(문화)에 밝은 외국인의 공동 번역(~2010년대)이라는 2세대 번역가 시대를 열었다. 이들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예술텍스트로서의 한국문학을 인식시키고 크게 주목받게 했다. 그리고 2010년 중반 이후 도착어로의 표현 능력이 뛰어나고 출발어와 문화에 이해가 깊은 3세대 번역가 시대를 열어 세계의 독자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 없이 한국문학을 읽을 수 있게 하였다.

무엇보다 두 기관은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문학의 해외 출판량, 현지 반응 등을 종합해 한국문학이 ‘문학한류 성장기’로 진입했음을 진단하고 수요자(해외 출판사와 독자) 중심으로 체계적 지원을 펼쳤다. 특히 한국문학번역원은 언어와 국가별 출판시장 특성에 맞는 맞춤형 번역·출판지원, 한국문학 번역·출판에 관한 모든 정보와 지원체계를 종합한 플랫폼 KLWAVE 구축, 번역대학원 대학 설립추진, 문학의 범주 확대, 한글로 글쓰기 확대를 위한 범세계적인 디아스포라 한글문학 웹진 ‘너머’ 발간 등 발 빠른 대응을 보였다. 번역대학원대학 설립이 국회 법안 발의까지 갔으나 무관심 속에 폐기된 것이 몹시 아쉽다.

중요한 것은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의 장이 열렸다는 것이다. 변방의 문학을 벗어나 세계인이 읽는 한국문학을 향해 발돋움한 지 불과 10여년 만에 한강 외에 황석영, 이문열, 김혜순, 이승우 등 노벨 문학상에 근접한 후보군 그리고 세계 유수 문학상 후보에 오른 천명관, 정보라, 김애란, 박상영 등 두꺼운 작가층을 보유하고 있기에 앞으로 보여줄 것도, 해야 할 일도 많다. 한국문학은 이제 노벨 문학상이란 큰 관문 하나를 통과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 기쁨을 차분히 음미하면서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이라는 생태조성을 준비해야 한다. 세계 독자들이 우수한 한국문학 작품을 계속 접할 수 있도록 번역지원을 계속 활성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거시적으로는 역량이 뛰어난 3세대 번역가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번역대학원대학 설립을 서둘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문학 자체가 튼실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가 중요하다. 그런데 2023년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은 종이책 기준 연간 1.7권으로 조사 이래 최저라고 한다. 세계의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주목하는데 정작 우리는 외면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있다.

다음으로 정부의 문학·출판에 대한 바람직한 정책 수립과 일관성 있는 집행, 그리고 체계적인 예산 지원이 따라야 한다. 지난해 대대적으로 K북 비전 선포식을 해놓고는 문학·출판 예산은 크게 줄였다. 내년에는 과거 수준으로 되돌린다고 하지만 번역의 미래인 번역가 양성 예산은 반토막 났다고 한다. 문학진흥정책위원회는 폐지되었고 2023년 1월에 출범한 8기 예술위원회의 문학 분야 위원은 아직도 공석이다. 예술위원회의 문학 부문 예산은 믿기지 않겠지만 30억원 수준으로 10년이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일의 한 축을 담당한 번역원 직원들은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 중 가장 낮은 최저임금이 조금 넘는 처우를 받으며 일한다. 당연히 높은 이직률로 고전할 수밖에 없다.

기적 같은 축복 속에 겉모습은 더없이 화려한데 내부 풍경은 씁쓸하고 안타깝다.

곽효환 시인·전 한국문학번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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