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박병규 기자] 2013년, 미국의 톱스타 안젤리나 졸리의 선택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세계 최고의 스타인 그녀가 멀쩡한 유방과 난소를 절제한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과 난소 절제 수술을 받은 이유는 그녀가 BRCA1이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BRCA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길 경우 유방암 발생 위험도는 10배, 난소암 발생 위험도는 20~40배 정도 증가한다. 졸리는 선제적인 조치로 절제 수술을 시행한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의 충격적 선택 이후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누구나 1,000달러를 내면 내 몸의 유전자 지도를 받아볼 수 있는 세상, 바야흐로 '유전 의학'의 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지금, 유전 의학의 현주소는 어떨까? 유전 의학은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 유전자, 암을 알아내다
올해 44세인 김민희 씨는 안젤리나 졸리와 마찬가지로 BRCA1 유전자 변이를 가진 보인자다. 암에 잘 걸리는 유전자를 가졌지만, 민희 씨는 절망하지 않는다. 실제로 유전자 변이를 확인한 환자들은 일반인보다 암을 일찍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변이에 맞는 맞춤 표적 치료제를 사용함으로써 더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도 있다.
2022년 12월 대장암 진단을 받은 박경진 씨. 어머니 또한 대장암과 자궁경부암을 앓았기 때문에 유전자 이상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검사 결과 APC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경진 씨는 ‘조금 더 빨리 유전자 검사를 했더라면 일찍 암을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평소 건강을 자신하던 경진 씨는 본인이 암에 걸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유전자, 나와 내 아이의 미래를 바꾸다
종양내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방경혜 교수. 방 교수가 종양내과 전문의가 된 이유는 위암으로 돌아가신 할머니와 대장암, 요관암, 육종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 때문이다. 유전자 검사 결과, 아버지와 방 교수 둘 다 린치증후군 환자로 밝혀졌다. 린치증후군은 생식세포 돌연변이의 일종으로, 이 증후군이 있으면 50세 이전에 대장암, 자궁암, 난소암 등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 린치증후군을 가진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동병상련을 느꼈다는 방 교수,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린치증후군 진단 당시 방 교수는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린치증후군은 상염색체 우성 유전 질환으로, 부모 중 한 명이 린치증후군이면 자녀에게 50%의 확률로 유전된다. 당시 결혼 1년 차, 방 교수는 자녀 출산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희망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착상 전 배아 태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돌연변이가 없는 배아를 미리 알고 임신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린치증후군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정한 유전자 검사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방 교수 부부는 린치증후군이 없는 아이를 낳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민원까지 넣었다. 과연 방 교수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꿈에 그리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 유전자, 희귀질환자의 한 줄기 희망이 되다
올해 2살 된 유진이는 출생 직후 원인을 알 수 없는 과호흡과 탈모, 피부염 등으로 인해 2달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야만 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로 알아낸 치료법을 통해, 일주일 만에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데. 유전자 검사로 알아낸 유진이의 특효약은 무엇이었을까. 유전자 검사로 인해 극적인 치료가 가능했던 유진이의 사례를 만나본다.
또, 선청성 난청을 앓는 주하는 30억분의 100 확률로 생기는 SSBP1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다. SSBP1 유전자에 결함이 생기면 난청뿐만 아니라 망막 이상 등의 안과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진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주하의 시신경 질병 위험성을 예측했고, 덕분에 선천성 백내장도 일찍 발견할 수 있었다. 의료진은 이제 주하의 돌연변이를 교정할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유전자 변이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가능할까? 주하의 사례를 통해 자세히 알아본다.
■ 유전자, 또 다른 생명을 낳다
뇌전증성 발달성 뇌증을 앓고 있는 다은이의 병 또한 유전자 변이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다은이 엄마 아름 씨는 고민 끝에 둘째, 그리고 셋째 아이까지 출산했다. 다른 아이들도 다은이 같은 병을 가지고 태어날까 불안했지만, 서울대 채종희 교수의 조언을 듣고 출산을 결심했다는데. 아름 씨가 건강하게 둘째, 셋째를 출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갓 6개월이 지난 루희는 엄마 오소이 씨에게 선물 같은 존재다. 소이 씨의 첫째 아이는 임신 중 유산됐고, 둘째 아이는 출산 하루 만에 사망했다. 또 아이를 떠나보내게 될까 봐 겁이 났다는 소이 씨. 그러나 소이 씨는 건강하게 아들 루희를 품에 안았다. 소이 씨가 건강한 셋째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 유전자, 양날의 검이 되다
하지만 유전자 시대가 도래하면서, 유전자 검사의 오남용 또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수진(가명) 씨는 딸 은서(가명) 출산 직후 한 유전자 검사에서 '염색체 미세 결실로 인해 자폐 스펙트럼 발병 위험이 높다'는 결과를 들었다. 이후 2년 동안 수진 씨는 항상 마음을 졸이며 은서를 키웠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은서는 오히려 또래보다 지능 지수가 6개월이나 앞선다는 진단을 받았다. 실제로 은서가 가진 염색체 미세 결실은 증상이 발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수진 씨는 지난 2년간 가슴 졸이며 아이를 키웠던 시간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증상 태아와 신생아에게까지 시행되고 있는 무분별한 유전자 검사가 보호자들에게 큰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심하게는 아이를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해야 유전자 검사라는 '현대 의학의 요술봉'을 잘 활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유전 의학이 우리의 삶과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알고 싶다면, 17일 수요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생로병사의 비밀' 「지금은 유전자 시대 – 당신의 유전자가 궁금해질 때」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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