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과 이스라엘 전쟁을 취재하다 레바논에서 이슬람 시아파 단체에 인질로 잡혔다가 6년만에 풀려난 테리 앤더슨 전 AP통신 기자가 1991년 12월 4일 석방된 후 당시 6살 딸과 시리아 다마스쿠스 미 대사관을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세계에 알린 테리 앤더슨 전 AP통신 특파원이 21일(현지시간) 별세했다. 76세. 앤더슨 전 특파원은 심장 수술 합병증을 앓다 뉴욕주 그린우드 레이크에서 숨을 거뒀다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과 정치학을 전공한 앤더슨은 지역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AP에 입사했다. 아시아·아프리카·중동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고인은 한국 언론이 보도 통제된 상황에서 1980년 5월 22~27일 광주를 취재하며 실상을 세계에 알렸다. 다른 외신 특파원들과 함께 직접 시내 곳곳을 돌며 사망자 숫자를 확인한 그는 AP 도쿄지국을 통해 타전한 기사에서 "계엄군은 사망자가 3명이라고 했지만, 시민군 쪽은 261명이 숨졌다고 했다"며 "이렇게 많은 시체를 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1996년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체육관, 교회에서 하루에 179구의 주검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2020년 고인은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으로 보낸 원본 기사, AP 도쿄지국에서 보낸 원고로 추정되는 기사 등을 광주광역시에 기증했다. 기사에서 그는 "광주 시민들은 기자들과 담화에서 시위는 처음에 평화롭게 시작됐지만, 공수부대들이 18~19일 시위자들을 무자비하게 소총과 총검으로 진압하면서 격렬한 저항으로 변했다고 말했다"고 썼다.

취재 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겪었다. 함께 현장을 취재했던 존 니덤은 1989년 LA타임스 기고글에서 앤더슨이 전남도청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다가 총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앤더슨이 사진을 계속 찍자 계엄군이 호텔 방을 향해 처음에는 머리 높이로 사격했고, 이어 가슴 높이로 총을 쐈다. 앤더슨은 재빨리 바닥에 엎드려 피할 수 있었다.

테리 앤더슨 전 AP통신 기자가 1980년 5월 22~27일 광주 5·18민주화운동 현장을 취재한 뒤 작성한 기사의 원본 자료가 지난 2020년 5월 공개됐다. 뉴시스

앤더슨은 AP 베이루트 지국장을 맡던 1985년 3월 시아파 무장 단체 헤즈볼라에 납치돼 6년이 넘는 기간 인질로 붙잡혀 있었다. 당일 오전 함께 테니스를 쳤던 사진 기자를 집에 데려다주던 중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당시 그는 결혼을 앞둔 상태로, 약혼녀는 임신 6개월이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 전쟁을 취재하던 앤더슨은 자신이 레바논에 있는 몇 안 되는 서방 국적자인 데다, 언론인이란 이유로 납치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억류 기간 구타와 학대를 받았던 그는 석방된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앤더슨은 미 연방 법원에 이란을 상대로 1억 달러(1382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 판결에 따라 동결된 이란 측 자금을 통해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보상금 대부분은 투자 실패로 잃었고, 2009년 파산 신청을 하기도 했다.

그는 언론인 보호 위원회 활동, 퇴역 장병 지원 등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앤더슨은 친구와 베트남 아동 기금을 설립해 베트남에 50개 이상의 학교를 세웠다. 2004년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민주당)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신 후 컬럼비아 저널리즘 대학원 등에서 강의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유족으로 딸 2명과 부인이 있다. 딸 술로메는 워싱턴포스트에 "아버지는 영웅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모두가 계속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일주일 전에 봤을 때는 '난 오래 살았고 많은 일을 했다. 만족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줄리 페이스 AP 수석 부사장 겸 편집국장은 "앤더슨은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보도하는 데 매우 전념했으며 커다란 용기와 결의를 보여줬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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