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은 좌절됐다 [사진=EPA=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상대방의 영토를 직접 타격하면서 중동 화약고가 폭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스라엘 지원 예산을 통과시키는 등 여전히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이며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이번 표결에서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에 찬성표를 던져 눈길을 끈다. 자칫 우방인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등을 돌리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정부가 그간 '두 국가 해법' 입장을 유지해 온 명분을 잃지 않으면서 중동 산유국들과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美, 팔 유엔 가입 반대… 유엔 총장 "수억 명의 불안정과 위험 증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18일(이하 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을 두고 표결에 부쳤으나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안건이 안보리를 통과하려면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표결에서 전체 이사국 15개국 가운데 12개국이 찬성했으나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은 좌절됐다. 2개국은 기권했다.

팔레스타인은 앞서 2011년에도 유엔 정회원국 가입을 신청했으나 이스라엘의 오랜 우방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직접 협상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로버트 우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이날 표결 후 발언에서 "미국은 유엔에서 시기상조의 행동에 나설 경우 그것이 설령 좋은 의도를 가진 것일지라도 팔레스타인 사람을 위한 독립 국가 수립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오랫동안 명확히 해 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독립 국가로서 준비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개혁을 단행할 것을 촉구해 왔다"며 "팔레스타인이 중요한 가입 조건을 충족하는지에 대해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를 밝혔으나 결국에는 미국이 최근 중동지역의 긴장에 대해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전쟁이 장기화되며 민간인 피해가 누적되고 있고,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이란간 전면전 우려도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표결은 이스라엘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팔레스타인 문제를 의제로 한 안보리 회의에서 "최근 긴장 고조로 인해 완전히 독립되고, 실행할 수 있는 주권을 갖는 팔레스타인 국가와 이스라엘 간 지속된 평화를 찾기 위한 선의의 노력을 지원하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라며 "두 국가 해법을 향한 진전의 실패는 이 지역 수억 명이 지속해서 폭력의 위협 속에서 살게 될 불안정과 위험만 증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도 강하게 반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결의안이 부결된 직후 성명을 내고 "미국의 거부권 행사는 국제법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이자 우리 민족을 겨냥한 집단학살 전쟁을 부추긴 것"이라고 규탄했다.

또한 "미국의 거부권은 불공평하고, 부도덕하고, 정당하지 않으며 팔레스타인이 유엔 회원국이 되는 것을 강력히 지지하는 국제사회의 의지에 어긋난다"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리야드 만수르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이 국제사회 공동체 안에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라며 "다른 국가와 동등하게 대우받고 우리 조상의 땅에서 자유와 존엄성, 평화와 안전 속에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엔 정회원국이 되는 것은 이 목표를 향한 첫 번째 단계"라며 "이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이날 표결에서 미국의 우방이라 알려진 한국과 일본, 프랑스도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미국이 얼마나 고립된 국가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미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팔레스타인은 유엔에 절대 가입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은 먼 훗날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안보리 표결 현황 [사진=연합뉴스]

36조 규모 이스라엘 지원 예산 하원 통과… 네타냐후 "친구들께 감사"

여기에 약 36조원 규모의 이스라엘 지원 예산도 지난 20일 하원을 통과해 이스라엘은 반색하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이스라엘 관련 안보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이스라엘에 264억달러(36조 4000여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이언돔 및 '다윗의 돌팔매'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40억달러(약 5조 5200억원) 지원과 아이언빔 방어 시스템에 12억달러(약 1조 6600억원), 위기를 겪고 있는 가자 지구 주민들에 대한 긴급 식량 및 쉼터 등 인도적 지원 92억달러(약 12조 6900억원)도 포함됐다.

이밖에 하마스 연루 의혹으로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고 있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로 자금 송금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그간 하원의 반대로 법안 통과가 지연된 만큼 오는 23일 상원에서 무난한 처리가 예상된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이스라엘은 환영한 반면 팔레스타인은 강력히 반발했다.

연합뉴스와 미국 CNN, 이스라엘 일간 타임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법안 통과 후 소셜미디어(SNS) X(옛 트위터)에 "감사합니다 친구들. 감사합니다 미국"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네타냐후 총리는 "법안은 이스라엘과 서방 문명 수호에 대한 초당적인 지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미 하원의 안보 지원 예산안 승인은 "우리의 적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요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이스라엘이 이란을 포함한 7개 전선에서 위협에 직면해 있다"며 "미국의 확고한 지원에 감사를 표한다"고 전했다.

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하원의 결정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침략이라고 규탄했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 대변인인 나빌 아부 루데니에는 20일 "위험한 예산안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공격 행위로 긴장이 더 고조될 것"이라며 "지원은 이스라엘에 지역 전역으로 전쟁을 확대할 청신호를 준 것이고 지역과 세계 안정 전망을 약화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은 6개월을 넘었다. 전쟁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하고 이스라엘군(IDF)이 반격하면서 시작됐다. IDF는 가자 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 진격을 앞두고 있다.

우리 정부는 팔레스타인 유엔 가입에 찬성표를 던지며 친중동 외교 노선을 재확인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 '팔 유엔 가입' 찬성표… 이스라엘, 한국 대사 초치

한편, 이번 유엔 안보리 표결에서 우리 정부는 찬성표를 던졌다. 우방인 미국과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그간 일관되게 유지해 온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는 명분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국뿐 아니라 많은 이사국이 이번 표결에서 찬성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두 국가 해법 진전을 위한 새롭고 강화된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에 찬성표를 던진 데는 글로벌 안보지형 급변으로 존재감이 커진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와 협력을 견인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측면도 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이-팔 문제는 이들 국가의 대표적인 관심사안 중 하나로, 이번 표결도 알제리가 아랍그룹과 비동맹그룹 등을 대표해 결의안을 상정하고 표결을 주도했다.

즉, 윤석열 정부가 중동정책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걸프만 산유국들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정부의 선택에 이스라엘은 대사 초치로 맞섰다.

연합뉴스와 이스라엘 일간 타임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오렌 마모스타인 이스라엘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소셜 미디어(SNS) X(옛 트위터)를 통해 "자국 주재 프랑스, 일본, 한국, 몰타, 슬로베니아, 에콰도르 대사를 21일 초치한다"며 "이들에게 강력히 항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른 국가에도 이와 동일한 수준의 항의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마모스타인 대변인은 "이들에게 전달될 명확한 메시지는 '지난해 10월7일 대학살 이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팔레스타인을 향한 정치적 제스처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자는 요구는 테러리즘을 향한 보상이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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