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거리에서 홈리스가 인도 위에 이불을 펴고 잠을 자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22일(현지시간) 노숙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시행한 도시 조례에 대한 위헌성 심사를 시작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하급법원은 해당 조례가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보수 성향 판사가 다수인 대법원에서는 판결이 달라질 수 있어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처벌 대신 적절한 주거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미국 서부 오리건주의 소도시 그린츠패스시는 2013년 노숙 행위를 처벌하는 조례를 시행하면서 소송에 휘말렸다. 이 조례는 공원이나 길거리 등에서 침구를 깔고 잠을 자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최대 295달러(약 4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린츠패스에 살던 홈리스 3명은 “비자발적인 홈리스 상태인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시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조례 시행을 금지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재판부는 해당 조례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형벌은 금지한다’는 미국 수정헌법 8조를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시 당국이 다시 항소를 제기하면서 대법원이 최종 위헌 여부를 결정하게 됐다.

이날 대법관들은 양 측 변론을 듣고 토론을 진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격렬한 논쟁이 2시간 넘게 이어졌다”며 “법관들의 성향에 따라 입장이 완전히 갈렸다”고 전했다.

진보 성향 대법관들은 수면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행위이며 집이 없는 홈리스에게 노숙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소냐 소토마이어 대법관은 “모든 도시가 이런 법을 시행하면 홈리스는 어디서 잠을 자냐”며 “잠을 자지 말고 목숨을 끊으라는 거냐”라고 말했다.

반면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조례를 위헌으로 판단할 경우 지자체의 정책적 결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NYT는 “대부분 판사들이 시 조례를 옹호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보수 우위(보수 6명·진보 3명)인 만큼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오리곤주 그린츠패스에서 노숙생활을 경험했던 홈리스 당사자가 “수갑이 아닌 주택을 달라”고 요구하는 집회에서 연설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전국노숙인벌률센터|AP연합뉴스

법정 밖에서는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인권단체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과 활동가 500여명은 “수갑이 아닌 주택이 필요하다”“주거는 인권”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시위대는 노숙 처벌 규정이 홈리스의 존재 자체를 범죄화하고 있다면서 “처벌 대신 임대료 상승과 주택 부족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법원은 오는 6월 말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이번 재판은 미국 전역에서 홈리스 인구가 급증해 각 주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열려 향후 여러 도시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년새 미국 내 홈리스는 12% 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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