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현지시간) 실시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집권 30년 만에 처음으로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것으로 예측됐다. ANC는 남아공 흑백 차별(아파르트헤이트) 역사를 청산한 '민주화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 단독 집권당 자리를 지켜왔지만 실업률과 빈부격차 등 민생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됐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개표가 66.04% 진행된 31일 현재 ANC는 41.84%를 득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친(親)기업 성향 제1야당 민주동맹(DA)이 22.64%로 2위를 기록 중이고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의 신생 정당 움콘토 위시즈웨(MK)가 12%로 뒤를 이었다. 원내 제2야당인 경제자유전사(EFF)는 9.5%로 MK에 밀리고 있다.

남아공 최초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벽화 앞에서 축구공을 차고 있는 남아공 소년. AP=연합뉴스

인구 6200만명인 남아공은 이번 총선에 18세 이상 유권자 2767만여 명이 등록했고 투표율은 58.45%였다. 직전 총선인 2019년 투표율은 66%였다. 최종 개표 결과는 다음달 2일 전후 발표된다. 이후 14일 안에 새 의회가 소집되고 여기서 대통령이 선출된다. 완전 정당 비례제인 남아공에서는, 유권자가 정당에 투표하고 그 득표율에 따라 의회에서 정당별 의석수가 정해진다. 대통령은 의회에서 선출한다. 통상 다수당 대표가 대통령에 선출되기 때문에 총선이 사실상 대선을 겸하게 된다.

ANC는 1994년 총선에서 62.7%의 득표율로 처음 집권한 이래, 줄곧 60%가 넘는 득표율로 정권을 지켜왔다. 직전 총선인 2019년에 처음으로 득표율이 60% 밑으로 떨어졌지만 57.5%로 과반은 지켰다. 이번 총선은 아직 개표가 진행 중이지만 남아공 주요 방송사 3곳 중 2곳이 ANC가 최종 결과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부 매체는 개표 초반 결과를 토대로 ANC의 최종 득표율을 약 42%로 예측했다.

ANC가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 당대표인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연정을 구성해 400석의 의회에서 과반(201표 이상)을 확보해야 연임할 수 있다. 1994년 이래 ANC가 줄곧 단독 집권을 해온 남아공에서 연정은 전례없는 일이다. 수전 부이센 요하네스버그 비트바테르스란트대 명예교수는 "남아공 정치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이콥 주마 전 남아공 대통령이 지난 29일 선거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ANC의 추락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높은 실업률과 만연한 범죄, 부패, 빈부 격차, 물·전력 부족 등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ANC의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올 들어 ANC의 지지율은 줄곧 40%에 그쳤고, 가장 최근인 28일 사회연구재단(SRF) 조사에서도 ANC의 지지율은 42.2%로 추정됐다. 한 유권자는 AP에 "ANC는 30년간 우리를 실망시켰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NC에 대한 유권자의 실망감을 파고들기 위한 신생 정당도 우후죽순 창당됐다. 이번 총선에 참여한 정당은 50곳 이상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으며, 이들 중 상당 수는 신생 정당이라고 AP는 전했다.

특히 부패 혐의 때문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퇴진한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이 창당한 MK는 ‘정권 심판론’을 내세워 득표율 3위를 기록 중이다. 요하네스버그대 아프리카 외교·리더십센터 오스카 반 히어든 선임연구원은 “ANC가 50% 이하로 득표하고 있는 이유는 MK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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