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승리 연설하는 스타머 英 노동당 대표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4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영국 조기 총선에서 제1야당 노동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출구조사대로 실제 결과가 나오면 14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게 된다.

현 집권당인 보수당은 345석에서 200석 이상 의석이 줄어들어 창당 이후 190년 만의 최악의 참패를 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번 총선 결과는 브렉시트 이후 급격하게 나빠진 경제와 고물가에 시달리던 민심의 폭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노동당은 유럽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공공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주요 정책을 설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동당, 650석 중 410석 확보.. 보수당 345석 → 131석

수낵 총리 "패배 책임 질 것".. 노동당 스타머 "변화 준비돼있다"

연합뉴스와 영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4일 오후 10시 발표된 출구조사에서 노동당이 하원 650석 중 410석으로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지난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이끌던 노동당이 418석을 얻은 것에 미치지 못하지만 14년 만의 정권 교체는 확실시된다.

반면, 리시 수낵 현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은 기존 345석에서 214석 줄어든 131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1834년 창당 이후 190년 만에 최악의 성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총선 전 여론조사에선 64석을 얻는 데 그쳐 1834년 보수당 창당 이후 최저 의석수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으나 최악의 결과는 면했다.

이 밖에 △자유민주당(61석) △스코틀랜드국민당(SNP·10석) △영국개혁당(Reform UK·13석) △플라이드 컴리(Plaid Cymru·4석) △녹색당(2석)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스코틀랜드국민당은 기존 48석으로 원내 제3당이었으나 당내 분열과 혼란으로 인해 지난 2010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도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보수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으면서 3당으로 올라서게 됐다.

또, 극우 성향인 나이젤 페러지가 이끄는 영국개혁당은 유럽 내 극우 바람을 타고 지난 2018년 창당 이후 첫 의회에 진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당을 전신으로 하는 영국개혁당은 앞서 총선에서 의석을 얻은 적이 없으나 올해 초 보수당을 탈당한 리 앤더슨 의원이 3월 영국개혁당에 입당하면서 처음 의석을 보유하게 됐다.

수낵 총리는 5일 총선 패배를 인정했다.

연합뉴스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수낵 총리는 "노동당이 이겼다. 스타머 대표에게 전화해 승리를 축하했다"고 말했다.

그는 "죄송하다"면서 "영국 국민은 오늘 밤 냉철한 판정을 내렸고 배울 것이 많다. 나는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 승리로 차기 총리가 유력한 스타머 대표는 5일 수락 연설을 통해 "오늘 밤 여기, 그리고 영국 전역의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그들은 변화에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변화는 지금 여기서 시작된다, 왜냐면 이것은 여러분의 민주주의, 여러분의 공동체, 여러분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투표했다. 이제 우리가 이뤄낼 때다"라고 강조했다.

[출처=연합뉴스]

고물가 등 경제난·이민 문제 등으로 민심 악화가 원인

이번 총선은 경제 회복에 자신감을 보인 수낵 총리의 승부수였으나 실제 민심은 전혀 달랐다.

앞서 지난 5월 수낵 총리는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오고 급등했던 물가가 다소 안정되자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하지만 고물가, 이민 급증, 보수당 내 스캔들 등으로 악화한 민심은 돌아서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제였다. 영국의 실질 임금은 1970년~2007년 두 자릿수 오름세를 이어왔으나 보수당이 집권한 2010년대 들어 0%대에 그쳤다.

특히 서민층이 최근 몇년간 가장 큰 문제로 호소한 것은 생활물가 급등이다. 2022년 10월 물가 상승률이 연 11.1%에 이르렀고 기준금리는 16년 만의 최고 수준인 연 5.25%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들어 물가 상승이 둔화했으나 식품 가격은 2022년 초보다 여전히 25%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 재집권한 보수당이 공공지출을 대폭 삭감하자 무상 의료 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질도 저하됐다. 병원들이 NHS 환자를 진료하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방식인데 정부 지원금이 크게 줄어 들자 병원들이 NHS 환자를 받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현재 병원 진료에 대기중인 환자가 750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치과 진료소 대부분이 신규 성인 NHS 환자를 받지 않아 손수 치아를 뽑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 5월 말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영국의 현재 상태가 2010년보다 나쁘다"고 답하기도 했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67%가 "2010년 이후 보수당 정부가 해온 국정 운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에 투표한 응답자 가운데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47%에 달했다.

이민도 영국인들의 불만을 높인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불법 이주민은 아프가니스탄, 이란, 튀르키예, 시리아 등지에서 EU 회원국인 프랑스로 들어왔다가 다시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들어오는 루트를 택한다.

2022년 4만5755명으로 최다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2만9437명으로 줄었으나,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1만3000여 명으로 지난해나 2022년 동기보다 많다. 2018년 이후 거의 12만명이 이 루트를 통해 영국으로 들어왔다.

여기에 보수당 소속인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파티 스캔들,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재정정책 실책 등도 정권 심판론이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총선 캠페인 과정에서는 보수당 인사와 당직자 15명이 조기총선 날짜를 두고 도박을 했다는 스캔들까지 터졌다.

이에 노동당 스타머 대표는 "변화가 필요할 때"라며 정권 심판론을 펼쳤고 이것이 먹혀 들었다. 노동당은 안정적인 경제 성장과 부의 창출, 흔들림 없는 국가 안보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중도화 전략을 쓰면서 지지층을 넓혔다.

총선 패배 한 수낵 총리 [사진=EPA=연합뉴스]

노동당 정부, 대내외 정책 손본다.. 공공서비스 강화·EU 관계 재설정

14년 만에 노동당 정부가 탄생하게 되면서 영국의 대내외 정책 노선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공공 서비스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은 국민보건서비스(NHS) 진료 예약 매주 4만건 추가를 통한 대기시간 감축, 청정 에너지 공기업 '그레이트 브리티시 에너지' 신설, 공립학교 교사 6천500명 신규 채용도 약속했다.

이를 위한 재원으로 조세 회피 단속 강화와 사립학교의 20% 부가가치세(VAT) 면세 혜택 폐지를 내세웠다. 또, 자본소득세(CGT), 농지 상속증여세 등 '부자 증세'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리시 수낵 보수당 정부의 간판 정책이었던 난민 관련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은 폐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낵의 보수당 정부가 르완다 정책 이행을 막는다면 유럽인권협약 탈퇴도 불사하겠다고 한 것과 달리 노동당은 협약을 고수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다만 노동당도 이주민 유입 규모가 사상 최다로 치솟은 만큼 국경 통제는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영국해협을 통해 건너오는 불법 이주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경안보본부를 신설, 현 국경수비대와 국내정보국(MI5), 국가범죄청(NCA)과 함께 밀입국 범죄 조직을 단속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동당은 선거 기간 보수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점으로 꼽혔던 안보 공약을 대폭 강화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도 흔들림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러시아 동결 자산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써야 한다는 데 서방 동맹국들과 의견을 같이한다.

보수당과 차별화한 외교 정책은 EU와의 관계 강화다. 노동당은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를 되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EU와 관계 재설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노동당은 영국과 유럽연합(EU)간 관계를 새로운 '영·EU 안보 협정'을 체결해 강화하고 프랑스, 독일 등 핵심 동맹국과 관계를 재건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동식물 검역 등 수출입에 타격을 주는 무역 관계도 재설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외신 "보수당에 강력한 거부 의사" "영국, 유럽 극우 돌풍 속 사회민주주의 보루로 급부상"

외신들도 이번 영국 총선 결과를 비중있게 전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019년 총선에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완수를 공약으로 내건 보수당에 표를 몰아준 유권자들의 민심이 이처럼 극적으로 돌아선 것은 보수당 집권 기간 누적된 좌절과 분노가 한꺼번에 분출됐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보수당이 유럽 금융 위기 직후인 2010년 정권을 잡은 이래 영국은 장기적인 긴축, 유럽연합(EU)과 결별한 브렉시트,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등으로 점철된 '격동기'를 거쳤다고 NYT는 지적했다.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렉시트, 팬데믹, 지난 5년 간 총리 4명을 갈아치운 정치적 혼란과 추문 등으로 얼룩진 10여년을 이끈 보수당에 유권자들이 '강력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영국 총선 결과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급등과 실질 임금 감소 등에 따른 삶의 질 악화에 분노한 유권자들이 집권당을 준엄하게 심판한 최근 국제사회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짚었다.

WSJ은 차기 총리 자리를 예약한 검사 출신인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실용적인 정책으로 정치를 안정시키고, 보수당이 초래한 혼돈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고 소개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들에서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극우가 득세하고, 중도좌파가 퇴조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영국에서는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영국이 뜻밖에 '사회민주주의의 보루'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독일 dpa통신도 영국 총선이 노동당의 압승과 보수당의 참패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dpa는 선거 참패로 리시 수낵 총리의 임기는 재앙으로 끝나게 됐으며, 선거 이후 수낵 총리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면서 보수당은 향후 나아갈 방향을 놓고도 내부 알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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