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 직후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지켜드는 도널드 트럼프 [사진=AP=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3일(이하 현지 시간) 유세 중 총격을 받았다. 전직 대통령이자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한 암살 시도로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이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미 정치권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피격 후 오른쪽 귀 주변에 피를 흘리면서도 주목을 불끈 치켜 든 강인한 면모가 지지층의 충성도를 높이고 중도층의 마음도 사로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인지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후보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선 승패가 결정났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용의자 21세 백인 남성, 현장서 사살.. FBI "단독범행 추정"

13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공화당 전당대회 전 마지막 유세를 가졌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의 대선 후보 공식 지명을 앞둔 출정식 성격의 자리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대에 오른 지 10여 분 만에 총격이 울렸다. 갑작스러운 총격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귀를 부여잡고 연단 뒤로 급히 몸을 숙였으며, 총격은 몇 차례 더 이어졌다.

비밀경호국 요원들과 경호원들이 무대에 뛰어올라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감쌌고, 즉시 현장을 떠났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총알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른쪽 귀 윗부분을 관통했다.

암살 시도 용의자는 펜실베이니아주 출신의 21세 백인 남성 토머스 매슈 크룩스인 것으로 드러났다. 크룩스는 현장에서 사살됐고, 주변에서 반자동 돌격소총인 AR-15 계열의 총기가 발견됐다.

미 연방수사국(FBI) 등은 이번 사건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로 규정하고 범행 동기 등을 수사 했으며, 국내외 테러 조직과 연계성이 없는 단독 범행으로 잠정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 당국은 이번 사건 용의자 자택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휴대전화와 SNS 등을 조사한 결과 외국의 극단주의 조직이나 개인 등 테러 범행과 연계 흔적을 찾지 못했다.

FBI는 "용의자 크룩스가 정신병을 앓았거나 온라인에서 위협적인 행동을 한 증거를 찾지 못했고, 특정 이념에 연루됐다는 것도 확인하지 못했다면"고 밝혔다. 다만 "암살미수 사건으로 간주하고 수사하고 있지만 국내 테러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살된 용의자가 사용한 총기는 AR-15 계열 소총으로 그의 아버지가 6개월 이전에 합법적으로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총기는 범죄 현장의 용의자 시체 옆에서 발견됐다. 수사관들이 용의자의 차량을 수색하면서 폭발물로 보이는 의심스러운 장치를 찾아내 버지니아주의 콴타코에 있는 FBI 연구실에서 추가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당국은 그러나 아직 용의자가 왜 암살 시도에 나섰는지 범행 동기를 확인하지 못했다. 크룩스는 펜실베이니아주 유권자 명부에 공화당원으로 등록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당일인 지난 2021년 1월 20일 진보 계열 유권자 단체에 15달러를 기부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노쇠한 바이든 vs 강인한 트럼프 이미지 구축.. "대선 이미 끝났다"

FBI 수사와 별개로 이번 암살 시도는 오는 11월 미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후보 교체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암살 위협에 노출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피를 흘리면서도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모습은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충분하다. 나아가 중도층들에게도 '노쇠한 바이든 vs 강인한 트럼프'의 이미지를 줄 것으로 보인다.

미 공화당은 이번 사건을 지지층 결집에 적극 활용하고 나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이날 X(옛 트위터)에 트럼프가 피를 흘리면서도 주먹을 쥔 채 팔을 치켜든 사진과 함께 "그는 미국을 구하기 위한 싸움을 절대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글을 올렸다. 차남인 에릭 트럼프 역시 같은 사진과 함께 "미국에 필요한 전사는 이런 것"이라고 언급했다.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는 "우리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적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오늘 그는 이를 보여줬다"라고 강조했다.

주요 외신들도 이번 일이 트럼프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가 "역사에 잊히지 않을 이미지를 만들었다"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의 본능적 연결, 현대 미디어 시대에 대한 숙달을 이보다 완벽하게 보여주는 순간을 상상하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CNN은 "지지자들에 의해 정복할 수 없는 영웅으로 여겨져 왔던 트럼프는 유세장에서 초자연적인 숭배 대상이었다"며 "적으로부터 계속 공격을 받는 그의 전사 이미지는 보다 강고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피격 사건으로 공화당 내에선 이미 선거에서 이겼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의 이벤트 베팅 사이트 폴리마켓에서는 트럼프 대선 승리 가능성이 70%로 전날보다 10%포인트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 승리 확률은 16%에 그쳤다.

CNN은 "트럼프는 이미 지지자들에 의해 정복할 수 없는 영웅으로 간주돼 왔으며 유세장에서 초자연적인 숭배 대상이었다"라며 "적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격 받는 그의 전사 이미지는 보다 확보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얼굴에 피가 흐르는 채로 주먹을 들어 올리는 저항적인 도널드 트럼프의 비상한 이미지는 역사를 만들 뿐만 아니라 올해 11월 대선의 경로를 바꿀 것"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도 "(피격 직후) 사진이 이번 대선을 정의할 것"이라며 "이는 어떤 이의 정치적 견해와 관계없이 현대사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미 경합주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완파하고 있다"며 "최근 십여년 간 미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역사를 돌아볼 때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암살 시도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박해받는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F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사건 직후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을 '궁극의 생존자'로 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그들의 눈에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2년 동안 (자신에게 적용된) 수십개 범죄 혐의와 맞서 싸운 정치적 피박해자"라며 "암살 시도를 극복한 것 때문에 공화당과 마가(MAGA·트럼피즘 열성 지지층) 진영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미화하고 존경하는 새로운 표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대 개최지 밀워키로.. '트럼프 대관식' 전망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밀워키에서 열리는 공화당 전대에 참석한다. 피격 사건 직후 전대 일정 연기도 논의됐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예정대로 실시된다.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어제의 끔찍한 일로 인해 내 위스콘신 방문과 공화당 전당대회 일정을 이틀 연기하려 했으나 나는 '총격범' 또는 암살 용의자가 일정표나 다른 어떤 것을 강제로 바꾸게 할 수는 없다"고 적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대 마지막 날인 오는 18일 공화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되고, 부통령 후보(러닝메이트)가 발표되는 일정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번 전대에 대해 '트럼프 쇼'(Trump show)라고 이름 붙이고 "대관식을 방불케 할 것"이라고 전했다.

CBS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이후 세 번째로 당의 지명을 수락하면서 (전대는) 절정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당 대선 후보를 적극 지지하는 내용을 설파하는 지원 연설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일단 극우 논객 터커 칼슨,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사업가 비벡 라마스와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비롯해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등 공화당 안팎의 정계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최대 라이벌로 꼽혔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도 전대 연설 초대를 수락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CBS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가디언은 "연사들은 밀워키에서 줄을 서서 '방탄 후보자'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라고 평했다.

사퇴 압박 바이든, 악재 겹쳐.. 경합주 펜실베니아 뺏길 수도

이번 총격 사건은 대선 후보의 건강 이슈와 결합할 경우 후보 교체론에 시달리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총격이 벌어진 펜실베니아의 민심이 트럼프에게 쏠릴 수 밖에 없게 됐다.

펜실베이니아는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근소한 승리를 거둔 곳이다. 현지 공화당 지지자는 물론 중도층의 동정 여론이 선거 결과에 반영된다면 선거인단 19명이 걸린 주요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선거 캠페인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바이든 대통령측은 이번 사태 전까지만 하더라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 총격 사건으로 정치 양극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어 네거티브 선거전을 펼치기 어렵게 됐다.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경쟁자를 거칠게 몰아붙이면 오히려 동정표를 강화시킬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후보 교체론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새로운 인물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