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독립 기여 평가에도

시대 뒤처지고 견제 없어 폐해

공화당 장악 하원선 “폐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 기고와 백악관 보도자료를 통해 종신직인 연방대법관의 임기를 18년으로 제한하고, 대통령이 2년마다 대법관을 임명한다는 내용의 연방대법원 개혁안을 공개했다. 사법개혁안을 내놓은 배경에는 연방대법관 종신제가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오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미 헌법은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의 임기를 따로 규정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만두거나 탄핵당하지 않는 한 종신직을 유지한다. 덕분에 연방대법원이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 자리매김하고, 사법부 독립을 뒷받침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여러 폐해가 드러나면서 1990년대 후반쯤 헌법학자와 언론을 중심으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고인 물’ 심화 현상이 대표적인 문제로 꼽혔다. 기대수명이 늘자 연방대법관 임기도 갈수록 길어졌다. 1970년대 말 15년이던 평균 재임기간은 최근 26년으로 늘었다. 무엇보다 연방대법관들이 더 오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자,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민주적 견제장치가 없다는 우려가 더 커졌다. 선거로 선출된 공직자는 유권자에게 직접 정치적 책임을 지지만 연방대법관의 경우 한 번 임명되면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헌법에 마련돼 있는 탄핵 제도는 한 번도 제대로 기능한 적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종신제는 연방대법관 자리를 정쟁의 대상으로 만드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대법관 교체 시점을 예상할 수 없다 보니 ‘어떤 성향의 대법관이 임명되느냐’가 어느 정권 때 공석이 나느냐에 달리게 됐다. 공화당은 진보 성향 대법관 후보를, 민주당은 보수 성향 대법관 후보를 어떻게든 낙마시키려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졌다.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는 적합한 후보를 가려내는 대신 공방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방대법관 종신제에 대한 개혁에 불이 붙은 건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직 중 브렛 캐버노,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등 세 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을 지명했다. 이에 따라 보수 6명, 진보 3명의 보수 ‘절대 우위’ 구조로 재편된 연방대법원은 2022년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보장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무효로 하는 등 보수 쪽으로 기우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다. 대법관 종신제가 특정 정당의 ‘알박기’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같은 해 사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도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1일 대법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1·6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선동 등 혐의에 대해 면책특권을 일부 인정하자 민주당 진영에서도 종신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제시한 ‘18년 교차임기제’는 기존 종신제의 폐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 중 가장 설득력 있는 방안으로 여겨져왔다. 대통령이 2년에 한 번씩 18년 임기의 연방대법관을 1명씩 임명하도록 하면 공정성과 균형성을 꾀할 수 있다는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이 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대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꾀하려는 ‘선거용 제스처’란 분석이 나온다. 연방대법관 임기제는 개헌이 필요한데, 공화당이 하원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의회 통과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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