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바탕(鍋巴糖). 바이두(百度)

노릇노릇 잘 구운 누룽지나 맛있게 튀긴 누룽지에 설탕 솔솔 뿌려 예쁜 접시에 담아 손님 식탁 위에 내놓았다.

설탕 뿌린 이 누룽지, 요리일까 아닐까?

나라에 따라 반응이 서로 다를 것 같다. 한국인이라면 설탕 뿌린 누룽지를 맛있어는 하겠지만 요리이니까 그 값을 지불하라고 하면 마뜩잖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아이들 군것질 내지는 서비스 차원에서 디저트로나 먹을 누룽지를 놓고 "돈을 내라고?"라며 뜨악해할 것 같다.

반면 중국인이라면 또 다르다. 이게 전채 요리일까 아니면 후식일까 궁금해할 수는 있어도 다양한 코스 요리 중의 하나로 받아들일 것이다. 혹시 돈을 내라고 해도 요리이니까 당연하다 싶어 그 값을 지불할 것이다.

중국인은 왜 설탕 뿌린 누룽지를 요리라고 하는데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이유가 있다. 실제로 설탕 뿌린 누룽지가 요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에도 이런 요리가 있었고 중국에서는 지금도 요리의 한 종류로 제공한다. 이름은 다양해서 궈바탕(鍋巴糖) 혹은 거꾸로 읽어 탕궈바라고도 하고 또는 쟈오탕궈바(焦糖鍋巴)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 기준으로는 자칭 요리 천국이라는 나라에서 별걸 다 요리랍시고 먹는다며 타박할 수도 있지만 설탕 뿌린 누룽지, 그렇게 만만하게 볼 것도 아니다. 일단 18세기 초중반의 청나라 때 강소성 일대의 상류층이 즐겨 먹던 음식을 모아 수록한 요리책에 나오는 관록 있는 음식이다. 청나라 건륭황제 때 진사시험에 급제한 후 강소성과 절강성 항주 등지에서 관리를 지낸 원매라는 사람이 쓴 『수원식단』이라는 책이다.

여기에 대백편(大白片)이라는 요리가 보인다. 백운편(白雲片)이라고도 했는데 흰구름 조각이라는 뜻이다. "종잇장처럼 얇은 하얀 쌀밥 누룽지를 기름에 튀긴 후 하얀 설탕을 뿌려서 먹으면 바삭바삭한 맛이 최고"라면서 "금릉(金陵) 사람들이 제일 잘 만든다"고 했다.

강소성은 중국 궁중요리, 상류층 음식의 바탕이 된 회양(淮陽)요리가 발달한 지역이니 대백편, 즉 설탕 뿌린 누룽지 역시 아이들 간식이 아닌 상류층의 고급 요리였음을 잠작할 수 있고 대백편을 잘 만든다는 금릉은 중국의 고도인 남경(南京)을 가리키니 누룽지 역시 갑자기 생겨난 요리가 아니라 이곳에서 꽤나 유서 깊은 요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해물 누룽지탕(海鮮鍋巴湯). 시각중국(視覺中國)

그런데 아이들 주전부리에 지나지 않는 설탕 뿌린 누룽지를 마치 엄청난 고급 음식인 양 수원식단에 수록해 놓은 것도 눈에 띄지만 한국과 중국의 누룽지 관련 음식을 곰곰히 따져보면 특이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중국에는 옛날 이름 대백편이었던 탕궈바를 비롯해 우리한테도 익숙한 해물 누룽지탕(海鮮(鍋巴湯), 탕수 누룽지(糖醋鍋巴) 등등 누룽지 요리가 알게 모르게 꽤 있다.

반면 우리는 조선 시대 북경에 간 사신 일행이 누룽지 끓인 물인 숭늉을 마시지 못해 소화가 안 된다고 불평했을 정도로 누룽지에 익숙했다. 그럼에도 정작 알려진 누룽지 요리는 없다. 누룽지 백숙(白熟)이 있지만 이름만 그럴듯할 뿐 누룽지 끓인 밥이고 그나마 누룽지 백숙 삼계탕은 현대에 생겨난 음식이다.

한국과 중국의 누룽지,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한국 밥과 중국 밥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쌀밥이 주식이다. 중국도 마찬가지일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북경을 중심으로 한 화북 지방은 전통적으로 국수나 만두 같은 밀가루 음식이 주식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 기준으로 어쩌다 먹는 쌀밥, 거기서 생긴 부산물인 누룽지는 별미였을 것이다. 누룽지가 요리로 발전한 이유다.

또 하나, 같은 쌀밥이어도 한국 쌀밥과 중국 쌀밥은 다르다. 벼 품종에도 차이가 있지만 밥 짓는 방법도 같지 않다. 지금이야 모두 전기밥통을 쓰니까 별 차이가 없겠지만 우리는 옛날부터 쌀을 끓이고 찐 후 증기를 빼서 다시 가열하는 방식, 바꿔 말해 뜸을 들여 밥을 짓는다. 반면 중국은 쌀을 찌는 방식으로 밥을 지었다. 그런 만큼 맛을 음미해 보면 한국과 중국은 밥맛이 다르다.

청나라 강희제 때의 한림원 석학, 장영이 밥 맛있게 먹는 법을 설파한 『반유십이합설』에서 "밥을 맛있게 짓기로는 조선사람이 최고"라며 "불을 잘 다루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바꿔말해 중국식으로 밥을 하면 누룽지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밥이 탄다. 그러니 누룽지를 만들려면 별도로 밥을 눌게 해야 한다. 모처럼 만든 누룽지이기에 요리로 발전했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누룽지가 만들어진다. 매일 나오는 누룽지, 굳이 요리로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과 중국,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확실히 다른 부분이 많다. 누룽지 요리도 그 한 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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