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가 더욱 밀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우크라이나가 이미 열세에 놓인 상황에서 북한이 가세할 경우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더 많은 지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나토군의 파병 필요성까지 거론되고 있어 미국과 서방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북러 혈맹으로 발전하면서 한반도 안보 환경에도 큰 영향이 예상된다. 북한이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ICBM 핵심 기술과 같은 군사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다 북한군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입장도 복잡해지고 있다. 북러 밀착은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3국 협력의 필요성을 강변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중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간 북한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컸으나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정세 현상 유지를 원하는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해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분석이다.

북한 파병 정황 속속 드러나.. 국정원 "정예부대 1만2천명 이송"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이미 여러 정황을 통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19일(이하 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는 러시아어와 한글이 병기된 설문지를 입수했다.

설문지에는 "모자 크기(둘레), 체복/군복 치수와 구두 문서를 작성해 주세요"라는 한글과 함께 러시아가 적혀 있다. 또, 설문지에는 '러시아씩 군복의 치수'라는 항목에 '2, 3, 4, 5, 6' 등의 숫자가 적혀있으며, '조선씩 크기'라는 항목도 기재돼 있다.

즉, 북한 군인이 자신의 신장이나 북한식 군복 치수를 표시해 제출하면 러시아 군복이 지급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SPRAVDI가 공개한 동영상도 북한군 파병 사실을 뒷받침한다. SPRAVDI는 연해주 세르기예프스키 훈련소로 보이는 장소에서 우크라이나 배치에 대비하는 북한 군인의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동양계 군인들이 장비를 배급받는 모습이 담겼는데 북한 억양으로 "넘어가지 말거라" "나오라 야" 같은 음성이 확인된다.

우리 국정원도 지난 18일 "북한이 특수부대 등 4개 여단 총 1만2천명 규모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이미 북한군의 이동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1차 수송 작전으로 북한 특수부대 1500여명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송됐으며, 조만간 2차 수송 작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1차로 이송된 특수부대는 특수작전국 예하 정예부대인 북한 11군단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북한은 21일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도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이달 초 우크라이나 언론 등을 통해 북한군 파병설이 제기됐을 때는 '가짜뉴스'라고 부인했지만 국정원 발표와 CNN 보도 후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北, 러시아 파병으로 북-러 군사밀착.. 외화벌이에 軍 현대화 노림수

이러한 정황을 볼 때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사실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파병은 러시아와 북한 모두에게 군사적 이득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병력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 입장에서 1만명이 넘는 병력을 전장에 투입할 수 있고, 북한은 외화벌이를 하면서 러시아로부터 ICBM이나 핵무기와 관련된 첨단 기술 이전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1970년대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군 현대화를 이루고 실전 경험을 쌓은 바 있다.

문제는 이번 파병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 힘의 균형이 러시아로 기운 상황에서 북한의 정예 병력이 전장에 추가로 투입될 경우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의 승리를 막기 위해 개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군사 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18일 미국의소리(VOA)에 "북한군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면 몇몇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자국 군대 파병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더 광범위한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확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니얼 프리드 전 폴란드 주재 미국 대사도 당장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파병할 가능성은 작겠지만 북한군이 전장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유럽 국가들의 참전 가능성이 대두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북한이 지상군 파병을 통해 이들이 전쟁을 경험하게 하고, 러시아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파괴 무기 조정관은 "러시아가 파병의 대가로 북한에 첨단 군사 장비, 방공, 첨단 전투기, 미사일·핵 프로그램에 관한 지원을 제공한다면 한반도 내 힘의 균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에 우리 정부의 대응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가 이번 파병을 북한과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 북한이 러시아에서 첨단 핵기술을 전수하고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참전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군이 공개한 보급품 받는 북한군 추정 병력 [사진=연합뉴스]

美 "北 파병 확인 안돼…사실이면 우려" 젤렌스키 "북한 현대전에 숙련 되면 위협"

일단 미국은 북한의 파병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19일 관련 보도를 확인할 수 없으나 사실이라면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 이후로 아직까지 미국의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의 파병을 인정할 경우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파병론이 다시 고개를 들 수도 있으며 이는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18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양자 회담 모두발언에서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우크라이나가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는 상황인 만큼 우리는 결연한 의지와 헌신, 지원을 유지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조한 만큼 조만간 관련 입장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도 이번 북한의 파병으로 우크라이나가 서방 동맹국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얻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유리한 위치에서 종전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군사적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영상 연설에서 북한의 파병에 대응해 더 많은 지원을 요구했다.

그는 북한의 파병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전쟁에 다른 국가의 사실상 참전"으로 규정하며 "북한이 현대전에 숙련이 되면 불행하게도 불안정과 위협이 많이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세계가 지금 침묵하고, 우리가 최전방에서 북한 군인과 교전해야 한다면 세계 누구에게도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전쟁을 장기화할 뿐"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한편,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은 한반도를 둘러싼 향후 정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특히, 경제 발전에 집중하기 위해 동북아 정세 '현상 유지'를 추구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이 마땅치 않다.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핵 개발을 가속할 경우 러시아의 영향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북러 밀착으로 중국이 동요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올해 6월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해 중국 측과 소통한 뒤 바이든 대통령에게 "점점 더 긴밀해지는 러시아와 북한의 방위 협력 때문에 중국이 동요했다"며 "이는 북러 협력이 특정 수준에서 김정은을 대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전달했다.

우드워드는 "중국은 북러 협력 강화가 북한 지도자를 더 무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며 "특히 김정은은 자신이 충분한 주목을 못받고 있다고 느끼면 더욱 무모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국내 정치권, 북한 파병 규탄.. 與 "국회차원 결의안 채택" 野 "살상무기 지원은 안돼"

국내 정치권에서도 북한의 파병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고 거기서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너무 명확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 말기에 어떤 종류의 이익을 얻어보겠다는 것 같은데 얕은 발상"이라며 "대한민국의 강력한 국방력과 K-방산의 산업적인 성과들이 그냥 장식용은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방은 튼튼하고, 국방과 외교·안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대단히 단호하고 엄정하다"며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모든 정책을 펴겠다"고 강조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의힘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군부대 파병 등 러시아와의 무모한 군사협력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북한은 즉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파병을 철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는 "국제법과 세계평화 위협하는 북한의 무모한 행위로 러-우 전쟁의 글로벌 확산과 전쟁 장기화 가능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향후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김정은이 무모한 오판을 내릴 경우 즉각 압도적인 힘으로 응징할 수 있도록 만반의 안보태세 갖춰 달라"며 "국민의힘은 최근 철도폭파, 러시아 파병, 오물 풍선 등 연일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북한 김정은 독재정권의 야만적 행태를 규탄하는 국회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국회 국방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성명에서 "북한의 파병은 국제법을 위반한 러시아의 전쟁범죄에 가담하는 위험천만한 도발이자 실익 없는 무리수"라며 "북한 독재 정권의 야만적 행태에 대한 결의안 채택해 동참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에서도 규탄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은 21일 최고위에서 "북한이 러시아를 돕고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을 보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행위"라며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보내는 것을 규탄하고, (파병)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전쟁 중인 나라에 무기를 수출하는 것은 나라를 위기로 빠뜨리는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당은 전쟁 중인 나라에 살상무기를 보낼 때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며 "국민의힘도 동의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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