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입막음' 재판과 관련해 뉴욕시 법정에 출석 전 지지자들엑 발언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 그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현직 대통령이 형사법정에 서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뉴욕 AP=연합뉴스]

[폴리뉴스 차재원 칼럼니스트]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가기 위해선 일단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냥 시민이어선 안된다. “자연적 출생 미국 시민(a natural born citizen)”이어야 한다. 미국 헌법 제2조 제1항 제5절의 규정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혹시 미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도 출생 당시 부모 중 한 명은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규정이 없다. 하지만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 외국에서 태어나 부모의 이민으로 함께 이주해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외국 국적으로 태어난 뒤 이민으로 삶의 중도에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러닝메이트인 부통령에게도 이 조항이 적용된다. 그럼 상·하원 의원 등 다른 선출직과 임명 공직자는 어떨까. 이런 제한이 없다. 일단 미국 시민이면 오케이다. 물론 상원의 경우 미국 시민으로 최소 9년 이상, 하원은 7년 이상 해당주 거주 요건을 채워야 한다. 오직 대통령에게만 자연 출생 미국 시민 자격을 둔 이유는 건국의 역사와 무관치 않다. 영국 식민지에서 전쟁을 통해 미국이란 나라를 독립한 만큼 외국의 영향에서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돼야 한다는 당시 사람들의 우려가 담겼다.

세월이 흘러 이 조항의 수정을 요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2004년 대선 때가 대표적 사례. 영화 터미네이터 주연 배우 출신 아널드 슈워제네거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대통령 출마 자격 시비가 빚어졌다. 슈워제네거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귀화 시민이어서 자연적 출생 미국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미국의 전통을 흔들지 말자는 공감대가 워낙 강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오히려 2008년 대선 때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 대한 공격 빌미가 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케냐 유학생 아버지와 미국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오바마의 출생지가 미국이 아닌 케냐여서 대선 출마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오바마는 출생지 하와이주 발급 출생 증명서를 공개하며 논란을 불식시키고 당선됐다.

설사 오바마가 케냐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의 대선 자격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미국 이민법에 따르면, 부모 중 한 명이 미국 시민권자이고, 그 부모가 일정 기간 미국에서 거주한 적이 있다면, 그들의 자녀는 외국에서 태어났더라도 "자연적 출생 시민"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어머니 앤 던햄은 미국 캔자스 출신이었고, 미국 시민이었다. 결국 오바마를 둘러싼 출생지 논란은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정당성을 흔들려는 정략적 차원의 음모였다. 실제 그의 반대 세력은 재임 8년 내내 계속되면 출생지 음모론, 이른바 ‘버서(birther)’ 운동을 벌이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때 앞장선 이가 바로 트럼프. 이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닦은 그는 공직 경력이 전무한데도 2016년 대선 경선에서 공화당 후보직을 따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감소를 외국 이민으로 충원하자는 대한민국. 우리도 앞으로 어쩌면 미국처럼 “자연적 출생 한국인” 조항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차이는 출마 제한 연령이다. 우리의 경우 만 40세 이상이어야 출마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만 35세다. 그러나 역대 미국 대통령 중 30대는 이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역대 최연소는 1901년 부통령으로 있다가 대통령직을 승계해 대통령이 된 시어도어 루스벨트로 만 42세였다.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 해리스는 만 59세, 트럼프는 78세로 30대 대통령은 애초 불가능하다. 한편 지난 2022년 한국 대선 당시 제1야당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을 놓고 출마 제한 연령이 잠깐 화제가 된 바 있다. 1985년생이었던 이 대표는 만 37세로 40세 출마 기준에 못 미쳤던 것. 아마도 미국이었다면 그가 대권 도전장을 던졌을 거라는 추측이 잠시 일기도 했다.

사실 미국 대통령 출마 자격이 이번에 뜨거운 감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트럼프. 현재 그가 무려 4건의 형사사건에 기소된 피의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범죄 피의자가 유력후보가 된 유일한 사례다. 지난해 트럼프가 여러 사건에 연루돼 기소가 하나씩 이뤄지자 궁금증이 커졌다. 우리의 경우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 일정 기간 피선거권, 즉 출마 자격이 박탈된다.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금고 이상의 형을, 선거사범은 1백만 원 이상 벌금형을 최종적으로 받았을 경우다. 그러나 미국은 형사처벌에 의한 피선거권 박탈 규정이 별도로 없다. 그래도 그간 미국 대선에선 형사사건 피의자의 출마는 거의 없었다. 설사 출마해도 유력후보 반열에 오를 수도 없었다. 거센 여론의 비판 공세를 넘을 수 없었기 때문. 이런 관점에서 직전 대통령 트럼프는 정말 예외적 존재다. 압도적 지지율로 공화당 후보로 다시 낙점된 트럼프. 현재 지지율에서도 민주당 후보 해리스와 초박빙이다. 당선 가능성도 현재로선 반반이다.

진행 중인 재판 흐름도 트럼프에겐 나쁘지 않다. 연방 검찰이 기소한 기밀문건 유출사건과 ‘1.6 의회 난입 사건’에 대해선 최근 대법원의 판결로 일단 한숨 돌렸다. 그가 대통령 재임 중 공식적으로 수행한 행동에 대해 형사 소추 면책이 적용된다고 결정했기 때문. 물론 비공식적 행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해당 사건을 맡은 연방 법원은 이를 구분한다는 핑계로 재판 일정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11월 5일 대선 전엔 관련 재판 일정이 없다. 반면 뉴욕 지방 검찰이 기소한 이른바 ‘입막음’ 재판은 1심의 배심원 평결에서 34건의 중죄 혐의가 인정됐다. 다만 1심 재판장은 대법원이 대통령 면책으로 인정한 공식행위 여부를 좀 더 따져본다는 이유로 1심 선고를 대선 이후로 미뤘다. 또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검찰이 기소한 2020년 대선 조지아주 결과 번복 외압 사건 역시 담당 검사의 스캔들 때문에 마냥 미뤄지고 있다. 트럼프로선 대선 후보로서의 사법 리스크는 일단 한숨 돌린 셈이다.

그리고 당선될 경우 트럼프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발동해 자신의 혐의에 대해 ‘셀프 사면’으로 사법 리스크의 완전한 탈출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통령의 자기 사면에 대해선 위헌적 행위라는 주장도 없지 않다.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판사가 될 수 없다.” 이런 헌법 원리와 부합하지 않은 탓이다. 따라서 실제 셀프 사면을 단행할 경우 상당한 법적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설사 셀프 사면이 성공해도 의회 차원에서 탄핵 절차가 발동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통령의 사면권은 연방 차원에서만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현재 뉴욕과 조지아주 지방검찰이 기소한 두 건의 사건은 트럼프의 셀프 사면이 안 먹힌다는 얘기다. 이들 사건은 두고두고 트럼프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은 헌법상 대통령 불소추 특권이 없어 당선되고도 지방검찰 기소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대통령의 국정 수행과 사법절차 공정성과 형평성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적잖은 법률적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이미 한번 논쟁이 빚어진 바 있다. 지난 6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현재 4개 형사사건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사 출신 한 대표는 헌법 84조에서 말하는 소추란 소송의 제기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대통령 당선 전 이미 진행 중인 형사 재판 피고인 후보가 대통령이 돼도 그 재판은 중단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놓고 법조계에선 찬반 논란이 팽팽했다. 실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 못지않게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판이다. 다르면서도 닮은 한국정치와 미국정치의 한 단면임엔 분명하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의 유튜브 채널 '차재원TV'에서 '2024년 미국 대선' 시리즈 동영상을 참고하세요. [차재원TV 갈무리]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 재 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전)

육군미래자문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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