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미-일 정상회담 결과는 양국이 중국 억제를 위해 군사 협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면서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날개를 달아준 것으로 평가된다. 2차대전 이후 미-일 관계와 일본의 군사적 위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동아시아 안보 질서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담은 일본이 추진한 ‘보통국가화’ 또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전환이 완성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군대 보유 금지와 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한 평화헌법에도 불구하고 2022년 12월 ‘국가안보전략’을 개정해 ‘반격 능력’(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선언하고, 국내총생산(GDP)의 1%이내로 억제해왔던 방위비 지출을 5년 뒤 2%로 늘리겠다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그 다음달 워싱턴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나 “역사적 방위비 지출 증대와 새 국가안보전략을 환영한다”며 일본의 움직임을 추인했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진정한 글로벌 파트너”로 격상된 일본의 공격 능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미국은 2차대전 종전 후 소련으로부터 일본을 방어한다며 대규모 군대를 주둔하고 이를 일본 억제 수단으로도 여겨왔다. 한국군과 미군이 연합방위체제로 묶인 것과 달리 주일미군과 자위대는 지휘 체계 등의 통합성도 없다. 하지만 이제 연합 작전 능력 제고를 위해 군 체계 개편과 공동 무기 개발·생산 계획을 밝혔을 뿐 아니라, 미국은 일본의 ‘적기지 공격 능력’ 발전을 위해 물적·기술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급격한 변화의 배경에는 중국에 대한 공통의 견제 의지가 있다. 일본은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미국처럼 중국을 “최대의 전략적 도전”으로 규정했다.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남중국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행동”을 비롯한 중국의 “힘이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함께 맞서겠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긴밀한 조율을 통해 중국의 도전에 계속 대응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위협 증대도 안보 전략 변화 이유로 꼽았다. 또 국력의 상대적 저하와 ‘트럼피즘’으로 대표되는 고립주의의 대두로 동맹들에 부담 전가를 추진하는 미국과,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전범국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도 미-일의 군사적 밀착 강화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주도 안보 질서에서 일본의 역할 강화는 양국 사이에서만 진행되지 않는다. 11일에는 미·일 정상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 함께 첫 3국 정상회의를 한다. 여기서는 남중국해 합동 순찰 강화 등 역시 중국 견제가 논의될 예정이다. 이 3국 정상회의는 지난해 8월 한-미-일 정상회의와 구조와 배경이 비슷하다.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의 ‘반중국’ 협의체인 쿼드에 참여한 일본이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의 오커스(AUKUS) 동맹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논의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 포위를 위해 만드는 모든 그룹에 일본이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일본은 7일 미국-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자국에서 한참 떨어진 남중국해에서 처음으로 해·공군 연합훈련에 참여하며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는 행동에 이미 가담하고 있다.

결국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중국 억제 전략에서 핵심축이자 첨병 노릇을 하는 동시에 평화헌법의 고삐를 벗어던지고 군사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단단한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일 동맹은 “이제 세계 전체의 봉홧불”이고 “전 세계의 평화, 안보, 번영을 위한 주춧돌”이라며 일본의 역할 강화를 추어올렸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은 언제나 미국과 굳건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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