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의 산실’이었던 서울 종로구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가 ‘백기완 마당집’으로 새롭게 문을 연다. 강한들 기자

김경복(콜트콜텍 노동자), 오수영(재능교육 노동자), 김미숙(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허지희(세종호텔 노동자).

‘백기완마당집’에는 호통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이름이 벽에 서려 있었다. 이들은 한살매(한평생) 노동자, 민중과 거리에서 함께 노동해방을 외치던 고 백기완 선생을 기리며 자신들과 백 선생이 함께한 사진을 액자에 끼웠다. “선생의 불호령이 그립다” “한 발 떼기의 불호령, 가슴에 새기겠다”고도 남겼다.

노동절인 다음달 1일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었던 서울 종로구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가 ‘백기완 마당집’으로 다시 열린다. 2021년 백 선생이 세상을 떠난 이후 약 3년 3개월 만에 그의 집이 열리는 것이다. 백 선생을 ‘옛새김(추억)’ 할 수 있는 유품과 함께 개관특별전 <비정규직 노동자 백기완>도 열린다.

‘백기완 마당집’ 입구에는 평소 백 선생의 말투처럼 “이거 봐 윤석열이! 나 알잖아, 내 말 들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전체 전시의 자문을 맡은 노순택 작가는 “(백 선생이) 청와대 앞에 가서 세월호 유가족, 노동자의 손을 잡으며 ‘이봐 박근혜, 이명박 왜 이런 식으로 정치하는 거야’라고 호통했던 것을 재해석한 것”이라며 “주기적으로나 긴급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교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 백기완 선생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을 그린 신학철 작가의 작품 <백기완 부활도, 산 자여 따르라>. 강한들 기자

고 백기완 선생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책임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 시위에서 사용하던 우산과 노란 리본. 강한들 기자

마당집 2층의 개관특별전에는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백 선생의 사진도 걸렸다. 2011년 6월 11일 희망 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으로 향했던 백 선생이 심야에 사다리로 담을 넘어 들어갔던 때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백 선생이 정문 위에 올라가 연설하던 장면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손을 잡고 우는 모습도 남아있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수억씨가 비정규직으로 복직했던 당시 첫 월급으로 백 선생을 위해 ‘스승의 날’ 잔치를 열었던 사진도 있다. 마당집 공사 마지막 날이던 지난 26일 김수억씨는 두 손에 사원증, 사원 번호를 들고 마당집을 찾아와 청소를 도왔다. 정규직 전환 연수를 마친 직후였다. 박점규 백기완노나메기재단 노동 담당 이사는 “백 선생의 발걸음으로 정규직이 되고, 복직되고, 웃음을 되찾았던 많은 노동자의 사연도 집에 같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통일꾼, 예술꾼, 이야기꾼, 우리망사랑꾼, 노동해방꾼이었던 백 선생을 기리는 상설 전시관도 꾸려졌다. 전시에는 백 선생이 생전에 쓴 네 글자 ‘노동해방’과 백 선생이 쓰고 엮었던 오래된 책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쌓였던 87개의 벌금통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악보 등 백 선생의 삶을 보여주는 유품이 있다.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은 “백기완 마당집이 백기완이 깨부수려던 어둠의 계절은 끝났는지, 억울한 죽음은 이제 없는지와 같은 질문이 모이는 집이 되기를 꿈꾼다”고 밝혔다.

백기완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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