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에 경증 환자 진료지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비응급 경증환자 수용 불가’ ‘단순 이물 제거, 코피 환자 수용 불가’ ‘안면 포함한 단순열상(피부가 찢어져서 생긴 상처) 환자 24시간 수용 불가’

8일 오후 2시 45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의 응급실은 이 같은 안내를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띄워놨다. 종합상황판은 119구급대원이나 환자 등이 실시간 병원 응급실 상황 정보를 파악하는 시스템이다. 병원 관계자는 “구급차를 타고 오는 환자 중 이런 증상을 보인다면 일반 종합병원이나 지역 병·의원으로 안내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응급실 경증환자 증가세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정부가 비상진료체계를 운영한 지 12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는 경증 환자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태 초기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이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가 회복된 셈이다.

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7일 기준 응급의료센터(권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기관)의 경증 환자는 그 전주보다 11.8% 늘어났다. 중증·응급 환자와 중등증(중증과 경증 중간) 환자도 각각 0.3%, 3.5% 증가했다.

9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환자를 응급실로 급히 이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특히 최상위 응급실인 권역응급의료센터같은 경우 지난 2일 기준 전주대비 경증 환자가 14.6% 늘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7일) 브리핑에서 이 같은 경증 환자 증가세를 언급하며 “권역응급의료센터 등 대형병원이 중증·응급 중심의 진료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경증환자라면 지역 내 병·의원을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정부와 의료계는 전공의 이탈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형병원을 찾는 경증 환자가 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 ‘빅5’ 병원 한 응급의학과 교수(응급실장)는 “환자들이 몇주 정도 잠깐 참았던 것”이라며 “어떤 제도가 만들어져 경증 환자의 이용 행태가 개선된 게 아니었다 보니 환자들이 이전처럼 응급실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송명제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경증 환자뿐 아니라 치료 시기를 기다리다 마지못해 온 중증환자까지 합쳐 응급실 환자는 증가 추세”라며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는 전보다 적은데 환자는 예년 수준이라 응급실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말했다.

사태 초반이던 지난 2~3월에는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찾는 사례가 줄어 “응급실이 응급실다워지고 있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환자들이 서서히 사태 이전 진료 행태를 보인다”라며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KTAS) 중 등급이 낮은 4~5등급에 해당하는 경증 환자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곧장 퇴원했다면, 응급의료관리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게끔 장벽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