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한 시술은 평소에 자주 하진 않아요. 여기서 검사받은 환자도 서울 대형병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지난 20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사랑병원 문병후 신경외과 과장은 수술복을 입고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이렇게 말했다. 2시간30분에 걸친 뇌동맥류 시술(코일색전술)을 막 마친 뒤였다. “저도 몇년 전까진 대형병원에 있었고, 이 정도 시술은 종합병원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무조건 ‘큰 병원’에 가겠다는 환자들이 많아요.”

문 과장에게 시술받은 환자 정필숙(51)씨도 처음에는 ‘큰 병원’을 찾았다. 정씨는 상급종합병원 두 곳에 문의했지만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진료받기 어려우니 2차 병원을 찾아보라’는 얘길 듣고 이곳을 택했다. 그는 “2차 병원에서도 잘한다는 걸 몰랐는데, 실제로 받아보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인천사랑병원은 277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이다. 통상 시술은 수술과 달리 절개하지 않고 기구 등으로 이뤄지는 의료행위를 뜻한다.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로 상급종합병원이 진료 차질을 빚으면서, 경증·중등증 환자들이 종합병원 등으로 분산되고 있다. 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가 없는 종합병원의 입원 환자(18~22일 평균)는 2월 첫주(1~7일 중 평일 평균) 대비 10.3% 증가했다.

인천사랑병원도 같은 모습이다. 최근 2주(3월4~17일)간 주간 평균 외래 환자 수와 수술 건수가 올해 1~2월 주간 평균보다 각각 11%, 14% 늘었다. 전공의 11명(파견 포함)이 이탈했지만 전문의(57명) 비중이 커 정상 진료 중이다. 정문 앞엔 ‘평소와 다름없이 진료, 수술 등을 전문의가 직접 시행하고 있다. 정상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의료진은 “의료전달체계 차원에선 현 상황이 정상”이라고 밝혔다. 김광 인천사랑병원 외과 과장은 “대형병원으로 갔을 법한 환자들이 수술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기회에 경증 환자 등이 지나치게 대형병원에 쏠리는 현상이 없어지고, 질환 수준에 맞는 의료기관을 찾는 행태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제도 정비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우열 인천사랑병원 호흡기내과 과장은 “‘서울의 대학병원에 가고 싶으니 의뢰서를 써달라’는 환자들도 있다.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게 의료전달 체계상 맞지만, 현재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2차 병원에서 치료했는데도 효과가 없을 때만 전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정부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완 인천사랑병원 원장도 “상급종합병원이 경증 환자를 너무 많이 봐왔고, 환자들도 무조건 대형병원을 찾는 데 익숙해져 있다”며 “경증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에 가면 비용 부담을 더 늘리는 등 선택권을 일부 제약해 정상적인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한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국민이 증상에 따라 적절한 의료기관을 찾도록 홍보하고 3차 병원(상급종합병원)은 응급이나 중증 진료에 집중하도록 수가를 높여주는 등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각급 병원별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3일 상급종합병원 이용 때 2차 의료기관 의뢰서를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상급종합병원들이 수도권에 6천 병상 이상을 추가로 마련 중인 상황에서 정부 정책이 실효성을 갖출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나백주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대형병원이 수도권에 6천 병상 이상을 더 마련하면 쏠림은 가속화할 것”이라며 “종합병원급 공공병원을 강화하는 등 환자들에게 대형병원 외 매력적인 선택지를 더 만들어주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