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삭제된 YTN 돌발영상 썸네일

“2024년 한국 언론은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라는 제목과 함께 소개된 미디어오늘의 창간기획 분석기사는 심각하고 진지하게 읽어볼 내용이다. 분석내용에 따르면 10년 전과 비교해 11개 언론사에서 대주주가 건설‧금융‧유통‧IT 기업으로 전환되었다.

[관련 기사 : 2024년 한국 언론은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

언론은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언론인들은 불안해하니 대주주는 공적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여러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애당초 그런 뜻으로 투자나 인수에 나서지도 않았고 권력의 정치적 의도에 주파수를 맞추려고만 한다. 그렇게 우리 언론은 통제의 외주화로 떠밀려 가고 있다. 올해 등장한 대주주나 경영진에 의한 언론통제 외주화는 기사 제목으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① YTN, “소주 땡기네” 윤석열 풍자 돌발영상 삭제 파문
② ‘홍준표 동창 기사’ 삭제한 매일신문 “기사는 회사 재산”
③ 기자 모르게 기사 삭제 한두 번 아니다
④ KBS PD들 “‘역사저널 그날’ 일방 폐지… 경영진 배임 검토”

기사삭제, 영상삭제, 프로그램 폐지 등 다양하고 촘촘하다. 국가 지도자의 사진이 훼손되면 범법행위로 간주하는 나라도 있다. 250년 통치를 이어가는 짜끄리 왕조의 태국에서 그러하다. 왕실비방은 징역 15년이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국왕 찬가도 흘러나온다. 여기는 왕정국가이다. 그러나 왕정국가에서나 통할 법한 이야기가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도 등장한다. 권력이 독점되어 남용되고, 비판할 책무를 지닌 자들이 침묵하면 왕정이든 공화국이든별로 다를 바 없음을 목격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 비서실은 수행기자들에게 대통령 미국방문 전용기 안에서 집무실 스케치 기사를 주문했다. 집무실에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놓아두었으니 “집무실 안의 목민심서가 눈에 띈다”는 구절을 넣어 훈훈하게(?) 써달라는 내용이다.

▲ 1979년 11월6일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 수사 본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사건 관련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쿠데타에 성공한 대통령만 이러는 게 아니었다. 누가 뛰면 누구도 따라 뛴다고 1985년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이던 이원홍 장관은 자신의 치사 연설문을 신문 1면에 돋보이게 게재하라고 각 언론사에 요구했다. 부탁일 수도, 요구일 수도, 명령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 안기부, 보안사, 경찰 등이 협의해 보도지침을 정하고,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이 이를 취합해 언론사에 전달하는 상황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이 관련된 요구는 곧 지침이고 지시였다. 대통령 동정을 전하는 기사나 정부여당 관련기사는 취급주의하라며 지침이 수시로 내려왔다. ‘크게’, ‘눈에 띄게’, ‘적절히’, ‘강조해서’ 등의 지시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권력형 비리 청산이 한창이던 1988년 국회는 언론청문회를 열었고 국회 문공위원들이 문화공보부로 현장 방문을 가 사무실 캐비넷을 열었다. 그 때 등장한 것이 〈언론인 개별접촉 보고서〉다. 문건에는 언론사 사장부터 현장 취재기자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챙겨 보도를 통제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기자협회보 1988년 12월16일자). 보고서에는 자사의 동정에서부터 노조와 젊은 기자들의 움직임, 사설․논평의 흐름까지 일일이 짚어가며 보고 받고 논의한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기자협회보는 ‘우리의 주장’(1988년 12월23일자)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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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들이 자사 내부의 동정에서부터 노조와 젊은 기자의 성향과 움직임까지 일일이 문공부 관리에게 ‘보고’ 했다 (중략) 이는 반민주적 반언론적 밀고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

▲ 2020년 6월8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보도지침 사료 기증식’을 통해 공개된 보도지침 일부.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그 당시는 문서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이런 보도지침과 접촉들이 파일로, 문자메시지로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있다고 해도 문제고, 없다고 하면 자발적이라는 이야기가 되니 그것도 절망적이다. 앞에 열거한 기사 삭제, 프로그램 폐지 등 황당한 사건들도 과거의 보도지침도 저지른 주체와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의미하는 바는 같다. 집권세력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고, 권력자의 눈에 들고 싶다는 욕망과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반민주적 반언론적 부역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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