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동 위원장은 수용시설 문제를 심각한 인권침해로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관으로서 ‘선감학원 아동 침해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두 번이나 작성했던 김진희(47)씨의 말이다. 그는 선감학원에 대한 두 번째 보고서(63명 피해자 진실규명)가 26일 오후 전체위원회에서 통과되기 5일 전인 21일 진실화해위를 사직했다. 조사2국 제7과 소속이었던 그는 “선감학원에 이어 여성수용시설을 조사해왔는데, 조사방해가 있다는 느낌 때문에 사표를 냈다”면서 방해의 주체를 명확하게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위원장 때문이냐”고 묻자 “그런 기류가 있다”고만 했다.

진실화해위는 올해 들어서만 4명의 조사관이 사표를 냈다. 지난해 11월 감사 결과 출장일정 허위보고 등의 이유로 중·경징계 결정을 받은 9명에 포함된 이들이다. 이 중에는 과장급 간부도 있다.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의 조사 담당자로서 표적 감사 논란 대상이 됐던 조사1국의 ㄱ조사관은 1개월의 정직 기간을 마치고 2월26일 복직했으나 조사업무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감사 결과와 무관한 조사관마저 진실화해위를 떠난다.

서울 마포 공덕동의 한 카페에서 26일 한겨레와 만난 김진희 전 조사관은 “집단수용시설 내에서 일부 인권침해 요소는 있었지만, 방치되었던 사람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에 대한 인정도 필요하다는 게 김광동 위원장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선감학원 사건에 대해서는 따로 단 한 번도 의견을 밝힌 적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은 1946년 2월부터 1982년 9월까지 부랑아 일소 및 갱생을 명분으로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8~19살의 아동·청소년들을 강제 연행 후, 경기도가 운영하는 외딴섬 선감도의 선감학원에 수용하여 피해자들이 사회와 격리된 채 일상적인 굶주림, 강제노역, 폭언·폭행 등의 가혹 행위를 당한 일이다. 경기도 자료에 따르면, 원아 대장이 확보된 피해자 수는 최대 5759명이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 10월 167명에 대해 1차로 인권침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이번 2차 결정으로 선감학원 조사를 종결하게 됐다.


26일 전체위에서 의결된 선감학원 진실규명 두 번째 보고서는 “운영주체인 경기도가 선감학원을 요보호아동 보호 명목으로 설치하였지만, 피수용아동을 감금 상태에서 강제노역·폭행·가혹행위·성폭력·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다. 김진희 전 조사관은 “국가가 시설을 운영한 목적이 보호가 아닌 감금이었다는 게 조사 결과 드러났다. 보호가 아니라 격리를 위해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2차 보고서는 경기도·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법무부 등에 “조사활동 종료 이후에도 추가 확인되는 피해자들에 대한 진실규명활동 제도화”와 같은, 1차 때보다 훨씬 구체적인 권고를 내렸다.

김진희 전 조사관은 선감학원 말고도 영보자애원과 서울시립부녀보호소 등 여성수용시설 사건을 조사해왔다. 그러나 “상부로부터 여성수용시설 사건을 조기 종료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사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신청인은 1명인데 조사를 너무 크게 벌인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사실 신청인은 1명이지만 피해 범위는 1만명 이상 되는 사건이거든요. 성매매 여성 등 본인의 피해를 피해라고 신청할 수 없는 분들이 많아요.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는 조기종료를 요청한 간부들이 김광동 위원장 눈치를 본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이와 관련 조사2국의 간부들은 “조사범위를 둘러싼 입장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선감학원과 여성수용시설 등을 통해 드러난 국가폭력은 현재진행형이에요. 가령 선감학원 피해자 한 분이 조사를 받을 때 아들이 동석했는데, 아들이 그러는 거예요. 한평생 아버지가 누나와 엄마와 자신을 왜 그렇게 팼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비밀이 풀렸다고요. 정작 아버지 본인은 가족들한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얘기해요. 본인은 쇠 방망이로 맞았지만 가족들한테는 각목으로 훈육했다는 식으로요. 국가폭력이 대물림된 겁니다. 또 수용시설이 과연 다 사라졌을까요? 여성수용시설에 위탁된 뒤 40여년간 시설에서 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한 서울역에 있던 노숙자들이 꽤 사라졌던데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김진희 전 조사관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2016년부터 여러 위원회와 인연을 맺었다. 2021년 5월 별정직 5급으로 들어온 진실화해위는 세월호 특조위(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사참위(가습기 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이은 세 번째 위원회였다.

그는 “진실화해위에서는 지금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학자들이 너무 입 다물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동 위원장의 막말과 거짓말에 의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부역 몰이를 지칭한 얘기다. “그런데도 일부 조사관들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조사에 전념하고 있다.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사표를 낸 걸 보면, 정작 본인은 희망을 잃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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