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 연합뉴스

“분리 징수 강제는 공영방송 재원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다. KBS 하나의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공영방송제도 자체에 대한 도전이다.” (2023년 6월21일, 김덕재 당시 KBS 부사장 발언) 

지난 30일 헌법재판소가 KBS의 수신료 분리징수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분리 징수하는 근거가 된 정부의 방송법 시행령 제43조 제2항 졸속 개정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공적재원이 흔들리게 되며 공영방송 제도는 통합징수가 시작된 1994년 이후 30년 만에 거대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헌재는 수신료 분리 징수를 두고 “공영방송의 기능을 위축시킬 만큼 청구인의 재정적 독립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입법재량의 한계를 일탈하여 청구인의 방송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분리하여 징수한다고 하여 그 수납률이나 징수 비용 등이 전기요금과 수신료의 통합징수가 실시되기 전(1994년)의 상황으로 곧바로 회귀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31일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권의 수신료 분리징수 강행이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 위기를 불러와 공공성 위축과 시청자 권익침해로 이어질 것이 자명한데도 합헌 결정을 내렸다. 나아가 ‘시행령 개정 꼼수’를 통해 상위 법률의 입법 취지를 훼손해 온 윤석열 정권의 ‘시행령 통치’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정당성까지 부여했다”고 헌재 결정을 비판했다. 

민언련은 “(헌재가) 수신료 외에도 방송광고 수입, 방송프로그램 판매수익, 정부 보조금 등으로 재정을 보충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든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안정적인 공적 재원구조 없이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 실현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외면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기준 수신료는 KBS 전체수입 중 48%를 차지했다. 그러나 헌재 결정으로 징수 비용으로 2000억 원 이상 낭비돼 공영방송의 공익 프로그램 축소·폐지가 불가피해졌다. 더욱이 방송법에 따라 수신료 납부 의무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납부 절차만 변경해 시청자의 불편과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민언련은 “시행령은 특정 징수방식을 제한해 방송 운영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으로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했다”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3명의 소수의견을 언급하며 국회와 정부가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구조 안정화 방안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향후 수신료 수입이 급감할 경우 정부가 세금에 기반한 보조금 형태 재원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 또는 KBS가 보유자산 임대·개발 운영을 법으로 보장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어떤 전망이든 야당이 국회 의석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논란은 불가피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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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전기요금 청구서가 꽂혀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같은 날 성명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사회와 사장이 교체되는 불안정성은 윤석열 정권에 이르러 돌이킬 수 없는 수신료 분리징수라는 공적 재원의 해체까지 불러왔다”며 “윤석열 정권은 공영방송 재원에 대한 상업광고와 국가보조금의 비율 증가가 자본과 국가에 의한 공영방송의 독립성 훼손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헌재의 판결을 똑바로 읽기 바란다. 수신료 분리 징수와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 안정성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언론노조는 나아가 “수신료 분리 징수를 통한 공영방송의 공적 재원 훼손은 30년 동안 수신료 제도를 정치적 공방으로 만들어 온 정치권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한 헌재의 판결은 왜 공영방송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지를 거꾸로 증명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언론계에선 공영방송 정치독립을 골자로 한 방송3법 재입법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언론노조는 “헌재의 결정이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신호탄이었던 수신료 분리 징수에 면죄부를 준 것이 결코 아니다”라며 강도 높은 투쟁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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