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 정지선 직전에 들어온 황색등. 여러분은 어떻게 운전하시나요? 그냥 지나가면 우리나라에서는 신호위반입니다. 미국, 영국, 일본, 호주,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신호위반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경찰도 황색등에 지나갔다고 일률적으로 단속하지는 않습니다.

황색등 규정이 사실상 사문화된 상황이니까요. 그렇다고 멈추자니 걱정입니다. 뒤따라오는 차량이 들이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갈지 말지 결정하기 힘든 딜레마존. 여기서 급제동했다가 추돌 사고가 나는 영상이 유튜브에 수두룩합니다. 신호위반 교통사고의 77%가 황색등 진입으로 인한 사고로 추정됩니다.
 

무슨 상황인데?

 
이런 사고를 줄이기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곳이 있습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도로교통연구본부입니다. 경기도 북쪽에 넓은 연구 부지가 있습니다. 드넓은 땅에는 실제 도로와 신호등이 설치돼 있습니다. 녹색등은 20초간 들어옵니다.

그다음 황색등, 적색등이 순서대로 켜집니다. 여기서 대체 어떤 기술을 연구하고 있을까요. 실험용 차량이 50km/h로 달렸습니다. 차량이 정지선에 거의 다다랐을 때, 분명 녹색등 20초가 다 됐는데 황색등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운전자는 느끼지 못하지만, 이상한 일입니다.

차량은 교차로를 안전하게 통과했습니다. 녹색등은 23초간 켜졌습니다. 원래 20초인 녹색등이 3초 연장된 것입니다. 비밀은 신호등 위에 달린 '레이더 검지기'에 있습니다. 검지기는 교차로 쪽으로 달려오는 차량의 위치와 속도를 계산합니다.

차량이 정지선에 너무 가까울 때 갑자기 황색등이 들어올 것 같으면 신호등이 녹색등을 1~3초가량 살짝 연장해 주는 것입니다. 교차로 딜레마존은 이렇게 기술적으로 삭제됐습니다. 운전자는 녹색등이 길어진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합니다. 황색등에서 갈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좀 더 설명하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은 아닙니다. 미국의 일부 교차로에 이미 적용된 신호등입니다. 미국에서는 황색등에서 멈추는 게 기본이지만, 급제동이 위험하면 교차로를 그냥 통과하도록 허용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딜레마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신호등을 개발해 도로에 적용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나타난 효과는 유의미합니다. 신호위반은 이전과 비교해 5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제동거리가 긴 대형 차량은 신호위반이 무려 80% 줄었다고 건설기술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 도로에서는 이 신호등을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우선 시범운영이 필요합니다. 연구원은 평택경찰서와 이미 협의를 마쳤다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말 평택 포승읍의 한 교차로에 설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평택당진항을 오가는 대형 차량이 무척 많이 다니는 곳입니다. 시범운영은 최소 1년 이상 필요합니다. 시범운영 결과 효과와 비용 등 여러 조건을 만족한다면 이르면 2026년부터 이 똑똑한 신호등을 다른 도로에서도 볼 수 있게 됩니다.
 
 
레이더 검지기는 특히 흥미로워서 좀 더 설명드립니다. 레이더를 쏜 뒤, 차량에 부딪혀 돌아오는 레이더로 위치와 속도를 측정한다는 점이 꼭 박쥐 같습니다. 돌아오는 신호의 개수를 파악해 일반 차량인지 아니면 트럭이나 버스 같은 대형 차량인지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형 차량은 제동거리가 길어서 딜레마존을 그만큼 길게 적용해 준다고 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신호등 위에 달린 시커먼 감지기가 꽤 스마트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시속 50km의 차량이 정지선으로부터 50m 안에 있을 경우에는 녹색등을 1~2초만 연장하면 교차로를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설치비용도 궁금합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장진환 연구위원은 검지기가 이미 설치돼 있는 이른바 '스마트 교차로'에는 추가 비용 없이 소프트웨어 신호제어 알고리즘만 바꾸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지기가 없는 신호등에는 100~500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한 걸음 더

운전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녹색등 시간 연장 기술. 당장 나오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교차로에서 '꼬리물기'를 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장진환 연구위원은 차량들이 교차로에서 느린 속도로 꼬리물기를 할 때는 녹색등이 당연히 연장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 꼬리물기가 아니더라도 차량이 시속 30km 정도로 서행할 때도 녹색등 시간이 길어지지 않습니다. 정지선이나 교차로 앞에서 충분히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녹색등 시간이 1번 연장되고, 뒤따르는 차량에 또 1번 연장되고, 계속 이렇게 반복되면 어떻게 되는 거냐는 의문도 있습니다. 연구원은 신호등에 설정된 '최장 녹색등 시간'이 있기 때문에 결국 황색등으로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래 녹색등이 30초, 최장 녹색등을 35초로 설정했다면, 35초에 정지선 직전을 통과하는 차량에는 시간을 더 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신호등도 딜레마존 문제를 100% 해결해주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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