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건’의 범인 A씨가 지난 3월 경찰의 유인으로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에 나타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서울대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건’ 이후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경찰 등 수사기관의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경찰은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위장수사’ 확대 방침을 대안으로 내놨지만 근본적으로 수사기관이 불법합성물 유통 등 범죄에 대한 중대성을 더 인식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경찰은 지난달 26일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위장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미성년자 대상 범죄에 한정했던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 대상 범죄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서울대에서 대학 동문 등을 상대로 불법 합성물을 만들어 퍼뜨린 일당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경찰보다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자 대책 마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해당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해외에 서버가 있는 텔레그램은 수사 공조를 해주지 않아 피의자 특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를 개시하지 않자 불꽃추적단 활동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꽃추적단 활동가는 2년여간 신분을 위장하고 피의자와 소통해 검거를 도왔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기관에 위장수사 관련 입법 건의 등을 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 대상 범죄까지 확대한다는 방침 정도만 정해졌고 구체적인 내용은 내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위장수사’ 실제로 가능하게 하려면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찰의 대책이 실효성이 있게 하려면 먼저 수사과정에서 필요한 구체적인 지원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기범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는 “위장수사 권한 확대 논의는 예전부터 나왔던 것”이라며 “경찰이 위장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권한을 더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수사관들이 피의자들에게 발각되지 않게 위장신분증, 주민등록번호 등을 마련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미국 등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관련 기관에서 수사관의 위장 신분과 관련한 문서를 만들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

인력 확충과 조직 개편 등도 과제로 꼽힌다. 이 교수는 “지난해 흉기 난동 등 강력범죄가 이어지면서 치안 중심으로 경찰 조직이 개편돼 사이버수사대 인력이 줄어든 것으로 안다”며 “보이스피싱 범죄 등이 늘어나며 수사력이 분산되고 있는데 (디지털성범죄를 전담하는) 인력 확충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위장수사 권한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황태정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식(범의유발형)의 함정수사는 사실상 국가가 국민을 속이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며 “재범방지 효과와 범죄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위장수사의 권한을 함께 논의하고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진짜 수사가 불가능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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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의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본부’ 현판.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나 ‘위장수사 확대’ 논의 이전에 무엇보다 디지털성범죄의 중대성을 인지하지 못한 수사기관과 사법당국의 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서울대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이 경찰을 찾아가 수사를 여러 번 요청했으나 경찰은 수사를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적인 위장수사 가능 여부를 따지기 전에 수사기관의 의지 자체부터 다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텔레그램이나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 해외 포르노 사이트는 피의자 특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경찰이 수사를 종결하면 피해자가 수사관처럼 나서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경찰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여 피해자의 신고 의지부터 꺾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검거 이후 적용되는 낮은 형량 등도 사법당국이 디지털성범죄를 가볍게 보는 인식을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 ‘딥페이크 방지법’은 범죄 구성요건으로 ‘(영상물 등의) 반포’ 등 목적을 정해뒀는데, 텔레그램 등 대화방이 개인적인 목적이라고 주장하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불법합성물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판 n번방’ 범인들 신상 “추측하지 말자”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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