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말했다. “진천은 말이야 생거진천이라고 하지.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여. 그런데 나는 ‘진천에 산다’고 하는데, 서울에 사는 친구는 ‘서울에서 산다’고도 자주 그러데. 서울 사람들은 ‘서울에서 산다’고 그러는 겨? 서울하고 말이 달라서 그런 겨, 아니면 둘 중 누가 틀린 겨?”

나는 “둘 다 맞는 겨”라고 했다. ‘살다’는 말 앞에는 그 장소 뒤에 ‘에’도, ‘에서’도 붙는다. ‘진천에 산다’고도, ‘진천에서 산다’고도 할 수 있다. 둘 다 자연스럽게 오간다. 다만 이때 어감은 조금 다르다. ‘진천에 산다’고 하면 단순히 거주하거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달된다. 정적이어서 ‘움직임’이 잘 안 느껴진다. 그렇지만 ‘진천에서 산다’고 말하면 ‘움직임’ 같은 게 다가온다.

존재 여부를 나타내는 말 ‘있다’와 ‘없다’가 쓰인 문장에서는 ‘에’가 자연스럽고, ‘에서’는 아주 부자연스럽다. 누구나 ‘공원에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공원에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색해한다. ‘공원에서’ 뒤에 어떤 동작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사람이 없다’고도 하지 않는다. ‘없다’에도 움직임이 없어서 망설임 없이 ‘공원에’를 선택하게 된다. ‘산책한다’는 움직임이 뚜렷한 말이다. 그래서 ‘공원에서 산책한다’고 한다. 이렇듯 ‘에서’는 움직임이 분명한 말, ‘에’는 그렇지 않은 말과 잘 어울린다.

‘살다’가 ‘에’와 같이 쓰일 때는 움직임이 그 상태로 계속된다는 거다. ‘에서’는 동작이 있음을 알리고. 진천 친구의 ‘진천에 산다’와 서울 사는 친구의 ‘서울에서 산다’에는 이런 속뜻이 반영돼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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