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에 붙어 있는 추모 글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1일 밤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역주행 중 인도로 돌진해 보행자 9명이 사망하는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68세의 '무사고 운전' 버스기사로 확인됐으며, 당사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으나 목격자들을 중심으로 급발진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고 희생자 대부분은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안기고 있다. 또, 고령 운전자의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늦은 퇴근 시간 날벼락.. 가해 차량 200m 역주행 후 인도로 돌진

전날 밤 서울 중구 시청역 7번출구 인근 교차로에서 승용차 한대가 역주행 중 인도로 돌진했다. 이로 인해 9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경찰, 소방당국의 설명과 목격자 진술을 종합하면 이날 오후 9시 27분께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을 빠져나온 제네시스 차량은 일방통행인 4차선 도로(세종대로 18길)를 역주행하며 갑자기 튀어나왔다.

이 차량은 빠르게 달려 도로에 있던 BMW와 소나타 차량을 차례로 추돌한 후 횡단보도가 있는 인도 쪽으로 돌진해 신호를 기다리던 보행자들을 덮쳤다. 이후에도 100m가량 이동하다 건너편에 있는 시청역 12번 출구 앞에서야 멈춰섰다. 역주행한 거리는 모두 200m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도에는 안전펜스가 설치돼 있었지만 인명피해를 막지는 못했다. 사고 직후 안전펜스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고 인도변에 자리 잡은 상점들의 유리문과 창문도 깨져 아비규환이던 사고 순간을 짐작게 했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 한복판인 데다 퇴근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민들이 몰리는 시간대였던 탓에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소방당국은 사고 직후 "사람이 10명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오후 9시 33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차량 37대, 인원 134명을 투입해 사고 현장을 수습했다. 사고 여파로 시청역 앞 세종대로는 양방향 통행이 전면 통제됐으며 임시응급의료소가 현장에 설치됐다.

아수라장된 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은행·시청·병원 직원들 퇴근길 참변.. 50대 남성 4명 30대 남성 4명 40대 남성 1명

희생자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 유족 "우리 아빠 아닐 거야" 오열

이날 사고로 인한 사망자 9명 중 6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3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다.

사망자들의 성별과 연령대는 50대 남성 4명, 30대 남성 4명, 40대 남성 1명이다. 이들은 인근 은행과 시청, 병원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시민들로 확인된다.

특히, 42세 박모씨와 54세 이모씨, 52세 이모씨, 52세 또 다른 이모씨 총 4명은 시청역 인근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 동료 직원들로 전해진다.

이들 중 1명은 사고 당일 승진했으며 대부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사이로 알려졌다. 때문에 동료 직원끼리 승진 등 인사 발령을 기념해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인도에 모여 있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시중은행 직원 A씨는 "사고 당한 사람 중 4명이 저희 은행 직원"이라며 "승진자 회식하고 나오는 길이었고 그 중에는 임원도 있다. 회사 인트라넷에 본인상 4명이 떴다"고 말했다.

더구나 사망자 대부분이 한 가정의 가장일 가능성이 높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고 소식을 접한 유족들은 희생자들이 안치된 장례식장에 도착해 신원을 확인했다.

한 여성은 자리에 주저앉아 "아니라고 해줘. 어떻게라도 말을 해줘야지"라며 통곡을 했고, 오전 1시께 임시영안실에서 나온 여성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엉엉 울며 걸어갔다. 자신의 이마를 때리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인 여성도 있었다.

또 다른 여성은 "아빠 아니라고 해, 우리 아빠 아니라고 해"라며 길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그는 곧이어 도착한 엄마와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냈다.

가해 차량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운전자는 급발진 주장.. 목격자들은 "급발진 아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가해 차량 운전자 A(68)씨를 검거했다. A씨는 음주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으며 '급발진'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통증을 호소해 일단 병원으로 이송했다.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운전자의 아내 60대 여성도 병원으로 이송됐다.

정용우 남대문경찰서 교통과장은 이날 현장 브리핑에서 "운전자도 다쳤기 때문에 아직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며 "진술이 가능한 시점에 조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 과장은 "음주 여부에 대한 기초적인 조사를 했는데 음주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고 경위와 원인에 대해 운전자 진술과 CCTV, 블랙박스 등을 토대로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A씨가 급발진을 주장하는 것과 달리 현장 목격자들을 중심으로 급발진 현상이 아니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CCTV 영상에는 사고를 낸 제네시스 차량이 사고 직후 감속하면서 멈추고, 갑자기 달려오는 놀란 시민들이 급히 몸을 피하는 장면이 담겼다.

일반적인 급발진 차량의 경우 도로 위 가드레일 등 구조물과 부딪혀 마찰력으로 억지로 감속을 하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도 "급발진은 아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시민은 "급발진할 때는 (차량 운행이) 끝날 때까지 박았어야 했는데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이 멈췄다"며 "(급발진이면) 뭐라도 박았어야 했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경찰도 사고차량에 대한 정밀 감정에 착수하고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2일 오전 열린 사건 브리핑에서 "급발진 주장은 현재까지 가해자 진술 뿐"이라며 "차량에 대해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갈비뼈 골절 상태로, 의사 소견을 듣고 입원 기간이 길어진다면 병원에서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령 운전자 자격 논란 재점화되나.. 정부, 65세 이상 조건부 면허 검토

가해 운전자가 고령이라는 점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A씨는 경기 안산 소재 한 버스회사에서 1년 4개월째 버스기사로 근무한 것으로 확인된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버스운전 경력이 상당한 직원이었고, 근무하는 동안 다른 사고는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이런 대형사고가 발생한 것. 가해 운전자의 주장대로 급발진이 아니라면 고령 운전자 자격 제한 요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야기한 교통사고는 3만9,614건으로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로 1년 전(17.6%)보다 늘었다.

정부는 현재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3년으로 하고, 면허를 갱신하려면 인지능력 검사와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있다. 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도 교통안전교육 권장 대상이다.

이에 더해 각 지자체는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고령자들에게 10만∼30만원 상당의 현금성 인센티브를 지원하며 자진 반납을 유도하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운전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면허 반납률을 매년 2% 안팎에 그친다.

정부는 운전 능력이 저하된 고위험군 운전자를 대상으로 야간운전 금지, 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제한 등의 조건을 걸어 면허를 허용하는 '조건부 면허제'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는 운전 능력에 따른 운전 허용 범위를 차등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다. 고령자의 운전 능력에 따라 야간, 고속도로 운전을 금지하는 등 운전 허용 범위를 달리하는 조건부 면허를 발급하고, 실질 운전 능력을 평가해 운전 허용 범위를 설정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들도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고령 운전자의 운전 능력에 따라 운전 거리, 시간, 속도 등을 구체적으로 제한한 조건부 운전면허를 발급한다.

독일에서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운전자에게 맞는 맞춤형 조건부 운전면허를 발급한다. 야간 운전이 어려운 운전자에게는 주간 운전만 허용하고, 장거리 운전이 어려운 운전자에게는 자택에서 반경 몇㎞ 이내에서만 운전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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