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소득보장’ vs ‘보편적 기초연금’…개혁 방안 크게 두 줄기로 논의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중랑구 일대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76만6000원.’

대구에 사는 A씨(82)는 비혼 독거가구로 기초연금(올해 단독가구 기준 최대 월 33만4810원)에 폐지를 수집해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소득이 적다 보니 지난겨울엔 보일러가 고장 난 상태로 추위를 견뎌야 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9일 발표한 ‘전국 폐지 수집 노인 지자체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폐지 수집 노인(전국 1만4831명)의 월평균 소득은 76만6000원. 옛 최저생계비와 유사한 개념인 기준 중위소득(올해 1인가구 222만8445원)을 한참 밑돈다. 이들의 한 달 소득은 기초연금이 사실상 절반 가까이 채워주는 것으로 보인다. 폐지 수집 노인 10명 중 9명(89.7%)은 기초연금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기초생활보장제 수급자로 선정됐다. 생계급여(올해 1인가구 기준 월 최대 71만3102원)를 받으면 기초연금을 받을 때보다는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다. 다만 생계급여를 받을 때 기초연금은 차감되기 때문에 A씨가 폐지 수집을 계속한다면 ‘폐지 수집 소득+생계급여’가 A씨의 소득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00만62명.’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7월 10일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1000만62명으로 집계됐다. 노인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전체 주민등록인구(5126만9012명)의 19.51%로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 진입을 눈앞에 뒀다. 65세 이상 인구 소득 70% 이하 가구에 지급하는 기초연금 재정소요도 커지고 있다. 기초연금은 전액 조세(국비+지방비)로 충당한다. 올해 정부 예산에서 24조4000억원이 기초연금으로 쓰인다. 2023년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기초연금 소요 재정은 2030년 39조6621억원, 2050년 125조4195억원, 2070년 238조29억원으로 증가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2023년 1.0%에서 2070년 3.1%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초연금 개혁…연금 ‘구조개혁’서 주요 변수

최근 발표된 두 가지 통계만 봐도 지금 한국사회는 ‘현세대 노인의 빈곤 완화’와 ‘공적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 확보’라는 두 가지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를 풀자면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 연금개혁에서 ‘구조개혁’은 기초연금·국민연금 및 직역연금, 퇴직연금 등을 아울러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다시 짜는 것”을 말한다. 국민연금 ‘모수개혁’(보험료율·소득대체율·수급개시연령 등의 조정)만 해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다. 국민연금이 1988년 도입돼 현 노인세대 안에서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많고, 연금액도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려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려면 보험료율도 많이 올려야 해 미래세대 부담으로 이어진다.

기초연금은 소득·재산을 평가해 노인인구 소득 기준 70%를 선정해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공공부조’ 역할을 한다. 또 국민연금 급여와 연계해 급여액이 정해지고 대부분 전액 급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연금’의 성격도 갖고 있다. 정책 운용 측면에선 ‘제도 성격이 애매하다’고도 평가한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를 받을 때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간주해 차감하기 때문에 두 제도 간 기능이 크게 중복되진 않지만, 기초연금액이 올라도 극빈층은 그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국민연금 연금액이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의 150%를 초과하면 기초연금액을 감액(기준연금액의 50%는 보장)한다. 이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둘 다 ‘재분배’ 기능을 지녀 설계된 장치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에 가입자 전체 평균소득(A값)을 넣어 연금액을 계산한다. 저소득층은 납부한 보험료 수준에 비해 높은 연금액을 받는다. 이런 재분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기초연금이 메운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 가입자들 입장에선 가입이력과 상관없이 받는 기초연금이 깎인다는 게 불만일 수밖에 없다. 감액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나오고 있다.

연금개혁에서 기초연금을 손본다고 하면, 노후소득 보장체계 안에서 기초연금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작업이 된다. 기초연금을 중심으로 보면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다른 제도와의 정합성을 맞추는 일이 될 수 있다. 2023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원회 최종 보고서 및 회의자료(2023. 09), 국회미래연구원의 ‘기초연금의 주요 쟁점 및 제도개선 방안’(2023. 08) 등을 보면, 그동안 기초연금 개혁 방안은 크게 두 줄기로 논의됐다.

기초연금 지급대상 범위를 줄이고 최저소득계층의 급여액을 인상하는 ‘최저소득보장 연금’으로 개편하는 것이 하나다. 노인세대 내 극빈층을 더 두텁게 지원해 노인빈곤을 현실적으로 완화하고 국가 재정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반면 중상위층은 소득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 또 다른 개혁안은 ‘보편적 기초연금’으로 전환해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개인이 노후에 기초연금을 받을 것을 예측할 수 있고, 재산·소득 조사를 할 필요가 없어 행정비용이 줄어든다. 그러나 노인인구 증가를 고려하면 재정부담이 커지는 단점이 있다.

지난 2017년 2월 7일 서울 마포구 마포구청에서 열린 일자리 모집 행사에서 한 노인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개혁 어떻게?…최저소득보장 연금 vs 보편적 기초연금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최저소득보장 연금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 위원장은 “앞으로 신규 노인들은 현 노인세대보다는 노후준비를 조금씩 해왔기 때문에 경제력 수준이 나을 것”이라며 “재정상황 등을 고려할 때 지급대상을 현 70%선에서, 연금 중간층 형성을 보면서, 아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개혁안을 지금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도 “국가 재정부담이 크니 지급대상을 조금 줄여서라도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급여액이 적은 분들, 절대 빈곤층에 속한 분들에게는 기초연금액을 더 높여 두텁게 지원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다”며 “빈곤층은 기초연금액을 그대로 소비하기 때문에 내수 살리기에도 기여할 수 있어서 중상위층까지 지급하는 것보다 정책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기초연금 적정성 평가위원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기초연금을 목표 수급률(70%)이 아닌 일정 선정기준액을 정해 주는 방식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중위소득 100% 이하’ 등의 기준을 잡으면 노인세대 소득이 올라감에 따라 지급대상이 서서히 줄어드는 효과가 난다. 또 기초연금액을 40만원으로 인상하되 연금액은 차등 지급하는 안을 제안했다. 적정성 평가위원장을 맡았던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도 과거엔 노인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자는 제도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보편적 기초연금안을 주장해왔는데,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초고령사회에서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현실적인 부담이 매우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노인빈곤을 해결하고 재정적으로도 지속할 수 있는 연금체계를 만들려면 비용 대비 최적의 효과를 낼 방안을 짜야 한다”고 했다.

최저소득보장 연금으로 전환할 땐 기초생활보장제와의 통합도 과제로 꼽힌다. 노인층은 별도의 공공부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만 당장은 극빈층의 기초연금액이 인상되더라도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이상을 보상하기 어려우므로 장기적인 개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에도 안정된 노후 보장을 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편적 기초연금’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최 교수는 “국민연금을 한 30년 가입해도 급여액이 90만원 수준에 머무른다면 그걸로 적정 노후생활을 하기는 어렵다”며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노인세대에 국민연금에 기초연금을 추가로 받자고 말할지, 아니면 국민연금 이외에 개인연금이나 부동산 소득이라도 준비하라고 할지 두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국민연금 수급자의 수급액은 월평균 약 64만원(올 3월 기준)에 그친다.

재정부담과 관련해선 증세를 통해서, 또 수급연령을 점진적으로 70세까지 상향하는 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최 교수는 제안했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대표도 “건강보험료를 포함해 노후에도 지출이 많다는 것, 또 노인세대가 젊어서 세금 열심히 내고 사회에 기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 맞다”며 “기준연금액을 소득구간별로 차등 지급하거나, 수급연령을 70세로 올리는 안 등 재정을 효과적으로 쓰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제각각···연금개혁 논의는 지지부진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실린 설문조사(2023년 7~8월·국민연금 가입자 2025명 대상) 결과를 보면 선호하는 기초연금 개편 방향은 ‘저소득 노인 한정 급여액 상향’(43.0%), ‘노인 전체로 확대 및 급여액 하향’(32.1%), ‘현행 유지’(12.3%) 순으로 나타났다. 올해 4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 의제숙의단(이해관계자 대표단)은 국민연금의 재분배 기능을 그대로 둔다는 전제하에 기초연금에 관해 2가지 개편안을 도출했다. ‘수급범위를 현행 유지하면서 급여수준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1안과 ‘수급범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차등급여로 하위소득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한다’는 2안이다. 500명의 시민대표단이 학습·숙의 과정을 거친 후 최종 설문에서는 1안(52.3%)이 2안(45.7%)보다 우세했다.

설문 문항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가 다르다. 결국 기초연금 개혁은 국민연금과의 관계를 설정해 ‘사회·정치적으로 조정·합의된 개혁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는 “기준연금액의 단계적 인상(40만원)을 통해 노인빈곤 완화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하되, 인상 시기와 방법 등은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해 논의하겠다”고만 밝힌 상태다.

지난 5월 말 21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두고 당시 여야는 국민연금 모수개혁안 중 소득대체율 인상 여부를 두고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7월 17일 여·야·정 상설협의체 및 국회 상설 연금특위를 만들어 함께 연금개혁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여당이 구조개혁을 이유로 개혁 논의를 22대 국회로 미룬 만큼 정부가 구조개혁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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