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생명의전화’ 유지 보수를 담당하고 있는 김봉수 팀장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반포대교에 설치돼 있는 생명의전화를 청소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섭씨 35도가 넘는 찜통더위로 뜨거웠던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반포대교 위로 자동차 매연이 섞인 후끈한 바람이 불었다. 다리 위를 걷던 김봉수씨 얼굴에 금세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강 폭 3분의 1 지점 쯤의 다리 난간에 설치된 ‘SOS 생명의전화’ 앞에서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가방에서 소독용 알코올과 마른 행주를 꺼냈다. 가로 30㎝, 세로 40㎝ 크기의 전화 부스 구석구석을 닦는 그의 손이 분주했다. “보기에 깨끗해야 수화기를 들 마음도 생기지 않을까요?” 김씨가 말했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긴급 상담 전화기들은 비관적인 마음을 먹고 다리를 찾는 이들을 위해 2011년부터 한강 다리 곳곳에 설치됐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현재 한강 교량 20곳과 강원 춘천 소양1교에 총 75대의 ‘SOS 생명의전화’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재단의 위탁을 받은 ‘한국생명의전화’가 전화기 너머에서 365일 24시간 상담을 지원한다.

전화기는 다리 위에서 비바람과 악천후, 혹한과 폭염에 그대로 노출된다.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사이자 팀장인 김씨가 한 달에 한 번, 한강 교량을 모두 돌며 상태를 점검하는 이유다.

서울 서초구 반포대교 위에 위치한 ‘SOS 생명의전화’. 전지현 기자

전화기의 버튼은 두 개다. ‘119’ 버튼은 종합방재센터로 연결된다. ‘생명의전화’ 버튼은 전문 상담사가 받는다. 이날 청소를 마친 김씨는 수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러 잡음이 있는지, 신호음이 잘 들리는지, 전화기의 위치 정보가 제대로 표시되는지 등을 확인했다.

문제는 없었다. 다음 전화부스를 향해 걸을 차례다. 반포대교에 설치된 전화기만 4개(상·하행 각 2개)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점검 날이면 하루에 다리 4~5곳을 돌아야 한다.

고장이 난 전화기 수리를 담당하는 사람도 있다. 이날 동행한 전기수리기사 곽영철씨(47)는 5년째 생명의전화 수리를 해왔다. 그의 가방 안에는 테스트 전화기와 다이얼입력기, 메인보드 등 문제를 진단하고 수리할 수 있는 부품이 가득했다.

생명의전화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전기기술자인 곽영철씨가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반포대교에 위치한 ‘SOS 생명의전화’에 쓰이는 작업 도구를 보여 주고 있다. 한수빈 기자

“버튼이 안 눌리거나, 소리가 안 들리거나. 전화기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데 있다 보니 술 취한 사람이 선을 끊어놓고 갈 때도 있어요.” 곽씨는 장마와 폭염이 반복되며 선로가 노후화되는 여름이나 배터리가 방전되기 쉬운 겨울에 고장이 잦다고 말했다.

피할 데 없는 햇볕과 비바람은 유지·보수를 더 어렵게 한다. 이날 김씨와 곽씨는 해를 피하기 위한 모자와 얇은 긴소매·토시 차림으로 뙤약볕 아래를 걸었다. 매연 탓에 곽씨는 마스크를 했다.

한강 다리를 걸어 건넌 경험이 셀 수 없을 만큼 쌓이면서, 다리별 특성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됐다. “반포대교는 반대편으로 넘어갈 건널목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가양대교는 건너갈 방법이 없어요. 간 길을 도로 돌아와서 건너편으로 넘어가야 하죠.” 김씨가 말했다.

이들은 ‘이 전화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보람을 말했다. 곽씨는 “해가 갈수록 보람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한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얘길 들으면 이전보다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이날 반포대교 위 4개의 전화기를 돌아보는 데에만 1시간쯤이 걸렸다.

생명의전화 유지 보수 담당자인 김봉수씨(왼쪽)와 곽영철씨(오른쪽)가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반포대교에 위치한 ‘SOS 생명의전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상담사는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교량 위 전화기가 문제없이 작동하면, 전화는 상담실로 연결된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생명의전화종합사회복지관에는 ‘전화상담 양성교육’ 등 자격을 갖춘 상담사들이 24시간 교대로 전화를 받고 있다.

2014년부터 상담 일을 해온 김지혜 상담사는 ‘기다리는 것’이 자기 일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분은 많지 않다”며 “말에 앞서 우는 분들이 많아 다 울 수 있게 기다려드리고, 괜찮다, 얼마나 많이 힘들었냐, 충분히 울어도 된다고 말하곤 한다”고 했다. 내담자의 자살 징후가 뚜렷해 위험하다고 판단이 들면 119 신고가 이뤄진다.

생명의전화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김지혜 상담사가 지난 1일 서울 성북구 생명의전화종합사회복지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무더운 여름과 살을 에는 겨울보다, 따뜻하고 선선한 봄·가을에 상담 전화는 더 많이 온다고 했다. 다만 대학수능시험 때는 예외다. 수능 전후는 상담사들이 가장 긴장하는 시기다. 김 상담사는 “사업 초기에는 장난 전화도 많이 왔는데, 위기 상황에 전화할 수 있는 전화기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며 “이젠 위기 상담 전화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통계를 보면,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3년 반 동안 위기상담 1474건과 119 구조 502건이 생명의전화를 통해 이뤄졌다. 매년 남성이 50~60% 정도, 여성이 20%, 성별불명이 10~20% 정도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매년 20~30%대로 가장 많았다.

이 일을 시작한 뒤 김 상담사는 한강을 건널 때마다 다리 위 전화기를 살핀다고 했다. 그는 한강과 죽음이 쉽게 농담처럼 연결돼 소비되는 것을 경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 상담사는 “죽는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 말의 무게가 가벼워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상담을 해온 지 10년인 그에게 전화를 받는 건 “매번 긴장되고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라고도 했다. 김 상담사는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에게 꼭 전하는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화를 건다는 것 자체가 용기 있는 행동이라 생각해서, 전화 걸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곤 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이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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