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직장갑질119와 더불어민주당 김주영·이용우 의원 주최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5주년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조해람 기자

한국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용자의 자율 해결’에 방점을 둔다. 노동청이 조사에 개입할 수는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사용자가 자체 조사를 하고,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보복이 발생할 경우 제재·처벌하는 구조다.

7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직장 내 괴롭힘의 1차 해결을 사업주에게 일임한 탓에 조사·사건처리 절차가 모호한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다. 고용노동부의 괴롭힘 판단 매뉴얼이 있지만 권고에 그친다. 노동계는 ‘괴롭힘 정의의 모호성’보다는 ‘조사·처리의 모호성’ 때문에 현장 갈등이 더 커진다고 본다. 현 제도로는 조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거나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터 안전(산업안전보건)’의 관점에서 괴롭힘 관련 제도를 촘촘히 정비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개인 간 갈등을 사용자·노동청이 조사해 판단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산업재해에 대비하듯 예방조치나 사업주 의무 등을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대표는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 ‘직장 내 괴롭힘 패러다임의 전환: 갑질에서 안전으로’ 토론회에 참석해 “괴롭힘 사건에서 사용자는 단순히 판단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근무 환경을 개선시켜야 하는 책임자”라며 “그럼에도 괴롭힘 사건을 마치 형사사건처럼 다루며 조사·조치 의무를 권한으로 오해하고, 신고한 피해자를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노골적으로 불리한 처우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이어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의 후퇴가 아니라 보완과 강화, 사각지대 해소”라고 했다.

최혜인 금속노조법률원 노무사는 “(현행법은) 괴롭힘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기준으로 위반 여부가 판단될 뿐”이라며 “사용자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와 판단을 했는지 등 질적인 부분에는 노동부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 노무사는 이어 “사업장 자율해결에서 더 나아가, 사용자의 조사와 판단을 조력하고 객관성을 더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 등이 조사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의장국을 맡게 된 한국이 ILO의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협약(190호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는 지난달 25일 한국노총이 주최한 ‘ILO 190호 협약 비준을 위한 법제도 개선 검토 토론회’에서 “190호 협약을 비준하면 일터 안팎에서 폭력·괴롭힘의 확산과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며 “안전하고 존중받는 근로환경이 마련되면 노동자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이 향상되고, 이는 생산성 증가와 사회적 비용절감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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