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재판이 끝나고 난 뒤

동생 전 연인에 같은 날 살해당한 자매

국민청원·수십통 탄원서 낸 아버지

무기징역에도 ‘가석방 가능성’에 고통

“대책 없으니 때리고 죽이는 일 반복”

“그놈 출소 때 살아있으려 꾸역꾸역 버텨”

사는 곳도, 나이도, 하는 일도 모두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죽음이었다.

한국에서는 매일 최소 한 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목숨을 잃거나 잃을 위기에 처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해 남편이나 연인 등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이다. 살인 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까지 합하면 피해는 449명으로, 19시간에 한명 꼴로 생명을 잃거나 위협당한다.

‘매일 한 명.’ 이 숫자는 너무나 단조롭고 일상적이어서 잘 와닿지 않는다. 서울 강남 의대생 여자친구 살해, 전 국가대표 럭비 선수 성폭행, 경기 하남 교제 살인, 경기 화성 오피스텔 모녀 살인, 경남 거제 교제 폭력. 올해 몇 달 사이 벌어진 이 사건들은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됐지만, 엇비슷하게 느껴진다. 미처 이름도 붙이지 못한 죽음은 이보다 훨씬 많다. ‘말을 듣지 않아서’, ‘나를 무시해서’, ‘다른 남자와 연락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서’ 스러진 여성이 매일 한 명이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의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기획은 이미 일상이 되어 무뎌진 교제폭력 피해자들의 죽음과 그 이후를 쓴다. 유족과 피해자들 목소리를 통해 친밀한 사이에서 오는 폭력은 어떻게 우리에게 단순한 ‘사건 1’이 되었는지, 주변에서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이 범죄의 특성은 뭔지, 반복되는 폭력을 수사기관은 왜 막지 못했는지, 이들을 보호할 법은 어째서 없는지, 사법부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을 안겼는지 차례로 살펴볼 계획이다.

기사에서 피해자와 생존자, 가족들과 조력자는 모두 실명이다. 반대로 가해자는 모두 익명의 A씨다. 하남의 A와 거제의 A 범행엔 큰 차이가 없다. 의대생 A와 운동선수 A를 구분할 필요도 없다. 교제 폭력은 어떤 유별난 개인의 일탈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젠더의 위계에 따른 범죄라는 게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기획의 제목은 아르헨티나의 페미사이드(여성 살해) 반대 운동 ‘니 우나 메노스(Ni Una Menos·단 한명도 잃을 수 없다)’에서 가져왔다. 임신중지권 보장, 여성 살해 규탄 등을 외치며 시민 수천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니 우나 메노스’ 시위는 라틴 아메리카를 넘어 전 세계에서 젠더 폭력 방지와 여성 연대의 슬로건으로 자리잡았다.

플랫은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X(구 트위터) 계정에 교제폭력 관련 기사와 사건 진행 상황 등을 쌓아나갈 예정이다.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랫은 여성의 죽음을 국가가 제대로 들여다보고, 예방하고, 수사하고, 처벌하고, 법과 제도의 기틀을 마련할 때까지 기록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플랫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아카이브 페이지

교제 폭력 살인 피해자 유족 나종기씨가 지난 7일 경기 파주시 자택에서 두 딸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 상자를 들고 있다. 조태형 기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스무 살, 스물한 살에 낳은 두 딸은 보물이었다. 크면서 말썽 한번 크게 피운 적 없었다. 길에 나가면 사람들이 부녀지간이 아니라 친구 같다고 했고, 자매는 마흔이 넘어서도 ‘아버지’ 대신 ‘아빠’라고 불렀다. 나종기씨(64)에게 딸들은 그렇게 살갑고 정겨운 존재였다.

“우리 때는 먹고 살기 어려웠고, 부모님한테 사랑도 많이 못 받고 자랐잖아요. 그게 마음에 남아서 애들 낳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줬어요. 바나나 하나가 짜장면 한 그릇보다 비싼 시절에 사먹였고, 내가 못 간 게 한이 돼서 대학도 다 보냈죠. 그냥 ‘올인’했어요.”

1980년 9월 4일, 1981년 9월 2일. 생일이 이틀 차이라 더 각별했던 연년생 자매는 떠날 때도 같이 떠났다. 2020년 6월 25일 밤부터 26일 새벽, 둘째 금주씨와 첫째 정은씨는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금주씨의 전 연인으로부터다.

연인 A씨(37)는 충남 당진의 한 아파트에서 금주씨가 술주정을 부리면서 자신을 나무라자, 순간적으로 격분해 잠든 연인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어 범행이 들킬 것이 두려워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살던 언니의 집에 몰래 숨어 있다가 역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언니의 휴대폰과 신용카드, 자동차 등을 훔쳐 달아난 그는 자매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주위 사람들에게 태연히 연락했고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찾는 등 추가 범죄도 저질렀다. A씨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22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며 원심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나종기씨의 두 딸은 교제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다. 나씨가 7일 경기 파주시 자택에서 공개한 사건 판결문. 조태형 기자

대법 판결 후 2년이 지난 현재, 두 딸을 한꺼번에 잃은 아버지의 삶은 여전히 산산이 부서져 있다. 건설 현장에서 관리 감독 업무를 하는 그는 새벽 4시면 집을 나서 5시에 현장에 도착한다. 서울, 경기, 강원 할 것 없이 전국을 다닌다. 종일 정신없이 일에 빠져 지내다 퇴근한 뒤엔 낚시 방송을 본다. 예능 프로그램도, 드라마도 아니고 오로지 낚시다. 웃는 것조차 죄책감 들어서다.

그를 가장 괴롭히는 건 “바뀐 게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7일 경기 파주 자택에서 만난 나씨는 “딸들이 죽고 나서도 이 나라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사람들이 제발 좀 알고,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들여다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살인 이전에 가정폭력 있었다
서로에게 ‘피난처’였던 자매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때려요
어떻게 죽일 수가 있어요”

나종기씨가 7일 경기 파주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던 중 자필 탄원서를 확인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4년 전 참척의 비극은 둘째 딸 금주씨의 이혼에서 시작했다. 전 남편과의 불화, 시가와의 갈등으로 이혼한 뒤 술을 입에 댄 게 화근이었다. 알코올 의존증으로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재활 시설까지 가게 되면서 금주씨는 원래 이름인 ‘정미’를 잃었다. “제발 술 좀 끊었으면 해서, 애들 엄마가 개명시켰어요. 그런데 재활 시설에서 그놈을 만나다니….”

둘은 약한 고리를 통해 빠르게 가까워졌다. A씨가 과거 폭력 등으로 전과가 있다는 사실, 다른 애인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채였다. 이들은 곧 언니 정은씨가 주점 사장으로 일하고 있던 당진으로 거처를 옮겼고, 셋이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자매가 그냥 사이가 좋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서로에게 ‘피난처’ 역할을 했다는 건 사망한 뒤에야 알게 됐다.

“정미(금주)가 그놈이랑 만난 기간이 짧아요. 3개월 정도 만나다가 그리 됐으니 얼마나 원통해요. 그런데 장례를 치르고, 유품 정리하면서 보니 정은이도 남편한테 맞았더라고요. 이혼한 줄도 몰랐는데 소송 서류를 뒤늦게 본 거예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심정이었습니다.”

정은씨는 2019년 7월 이혼했다. 그가 생전에 쓴 이혼 신청서를 보면 전남편은 2016년 무렵부터 집착과 의심이 심해져 정은씨의 휴대폰을 감시하고, 스토킹했다. 술에 취해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아이들 앞에서 정은씨를 마구 폭행하는 일도 많았다. 바닥에 나동그라질 정도로 맞아 온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든 정은씨는 “극도의 공포와 정신적 충격,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이혼 신청서에 썼다.

수년 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겨우 벗어나게 된 정은씨, 그리고 이전 결혼에서 아픔과 상처를 갖고 있던 금주씨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폭력에 취약한 상태의 자매는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에 살 정도로 서로에게 깊이 의지했다. 그렇게 가깝던 동생, 그의 새로운 연인에게 둘 다 목숨을 빼앗길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나종기씨가 7일 경기 파주시 자택에서 공개한 가족관계증명서에 두 딸의 이름 옆으로 ‘사망’ 글자가 적혀 있다. 조태형 기자

어떤 죽음이라도 자식의 죽음은 부모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애정을 기반으로 만나던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과 살인은 나씨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애들이 누굴 만나면 ‘직업이 뭐든 상관없다. 사람은 다 평등하니까. 네 자유’라고 했는데 이럴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때려요. 어떻게 죽일 수가 있어요.”

이 사건은 발생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나씨가 올린 엄벌 청원에는 26만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고, 법원도 사건의 심각성 등을 고려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국내 사법 체계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처벌 중 하나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판결을 수긍하지 못한다. 그는 “사형이 아니면 20년 뒤 모범수로 가석방될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 자체가 고통스럽다”며 “그때를 기다렸다가 그놈을 죽이고 나도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딸들 죽고도 바뀐 게 없어요
나도 그놈 죽이고 싶은 심정이죠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이 대한민국에서 믿을 건 없으니까”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는 나종기씨. 조태형 기자

나종기씨가 자필로 써서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하나도 아닌 두 딸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저희들은 세상 살아야 할 목적과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조태형 기자

범죄가 발생했을 때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수사와 검거, 사법 체계의 지원이나 보호,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사회적 안전망으로 잘 기능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건이 계속 벌어지는데도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보려는 노력이 없다면, 피해자와 유족은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불신하고, 변화 없는 현실에 좌절하게 된다.

나씨가 계속 “이 세상에 믿을 건 나 뿐”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사건 이후 “내가 경찰이라도 된 것처럼 증거를 이것저것 찾아다녔다”고 했다. 경찰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도주 기간 A씨의 휴대폰 소액 결제 내역을 추가로 발견해 제출한 것도 나씨다. 법정에서 가해자가 반성문을 수 차례 내면서 “피해자 유족에겐 눈 하나 깜짝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역시 꼬박꼬박 자필 탄원서를 써냈다. 그럼에도 나씨는“후회한다”고 했다. “법원에서 ‘정숙하라’는 말에 가만히 있었어요. 그때 차라리 소리라도 지를 걸 후회합니다. 뭔가 바뀌기라도 한다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분신자살이라도 하고 싶다는 심정이에요.”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그냥 연애고 결혼이고 다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 “남자 잘못 만났다가 억울하게 죽어도 정부는 아무 책임도 안 집니다. 우리 애들이 죽기 전에도, 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나요. 이때까지 국가가 가해자들에게 어떤 경고 메시지도 주지 않은 결과예요.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다시는 안 일어나게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때려도 되고, 죽여도 괜찮다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잖아요.”

아버지가 두 딸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 상자. 활짝 피었던 꽃은 모두 시들었다. 조태형 기자

딸 같은 사람들이 매일 죽는 걸 보며 남은 사람들의 상처는 계속 곪아간다. 나씨는 지금 가족과 따로 산다. 다른 지역에서 아내와 손녀가 함께 지내는데, 그는 그 집에 두어달에 한번 정도만 들른다. 일 때문에 전국을 다녀야 한다는 핑계가 있지만, 실은 딸을 잃은 엄마와 엄마를 잃은 딸이 같이 사는 모습을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손녀는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지만, 그만큼 깊은 우울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중학생일 때 엄마가 사망한 손녀는 대학생이 됐지만 한 학기만 다니고 바로 휴학했다. 나씨는 “손녀가 중학생일 때 사건이 벌어져서 대강 (사건 내용을) 안다. 여전히 죽음을 내려놓지 못한 아내와 손녀를 보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했다.

남은 자들의 회복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씨는 아내와 손녀의 병원비와 약, 생활비 등으로 월 200만원 정도를 집으로 보낸다. 변호사 선임 등 소송 비용으로 국민연금까지 깨면서 경제적 어려움은 커졌고, 가족 뿐 아니라 직장 동료, 지인, 친구들과의 관계도 깨졌다. 그는 “그날 이후 나한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돈을 벌어도 낙이 없고, 친구도 만나기 싫고, 허무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한강에 뛰어들려고 갔다가 돌아온 것도 두 번이에요. 그래도 꾸역꾸역 버텨요. 그놈이 나올 때까지 어떻게든 내가 살아야 할 것 같아서.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이 대한민국에서 믿을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그래픽 이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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