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법원이 '이진숙·김태규 2인 체제'의 방송통신위원회에 제동을 걸었다. 앞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신임 이사진 6명을 임명한 방통위의 심의·의결에 대해 위법 여부를 다툴 여지가 있다며 본안 판단 때까지 임기를 시작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해 방문진 이사를 여권 우위로 바꾸고, 이를 바탕으로 MBC 사장을 교체하려는 움직임에 차질이 생겼으며, 방통위 의결 후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KBS 이사진들도 임기 논란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또, 법원이 이진숙 2인 체제의 위법성을 확인한 만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2인 방통위, 방문진 이사 6명 선임.. 법원 "2인 체제 결정, 입법목적 저해"

지난달 31일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현 직무대행)은 임명 약 10시간 만에 △김동률 서강대 교수 △손정미 TV조선 시청자위원회 위원 △윤길용 방심위 방송자문 특별위원 △이우용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임무영 변호사 △허익범 변호사 등 6명을 방문진 신임 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야권 성향의 방문진 이사 3명은 "새 이사진 임명 처분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취소소송을 내고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서울행정법원이 26일 이들의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함에 따라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새 이사진 취임은 불가능해졌다.

이날 재판부는 임명 처분의 효력이 정지되지 않을 경우 현 이사진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권 이사장 등이 본안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방문진 이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권 이사장 등에게는 임명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특히, 2인 체제 방통위의 의결에 대해 위법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2인의 위원으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것은 방통위법이 추구하는 입법목적을 저해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본안소송을 통해 2인 위원 심의·의결에 의한 임명처분의 적법 내지 위법 여부를 다툴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임명 처분에 하자가 없다는 방통위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방통위가 제출한 자료·심문 결과만으로는 합의제 기관의 의사 형성에 관한 각 전제조건이 실질적으로 충족됐다거나 절차적 하자가 없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날 법원의 판단에 따라 KBS 신임 이사 7명에 대한 자격 논란도 불거지게 됐다.

방통위는 방문진 이사 임명안을 의결할 때 KBS 이사 7명 추천안도 함께 의결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튿날 이를 재가해 내달 1일 임기 시작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법원이 '2인 방통위'의 심의·의결에 대해 위법성을 다툴 여지가 있다고 한 만큼 윤 대통령의 임명도 무효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 "2인 위법 아냐.. 즉시 항고" vs MBC "양심있는 결정에 감사"

이날 법원의 결정에 대해 방통위는 즉시 항고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방통위는 26일 보도자료를 내고 "법원의 방문진 이사 임명처분 효력 집행정지 사건 결정에 대해 결정 내용과 이유 등을 검토해서 즉시 항고하기로 했다"며 "방문진 이사 임명처분 무효 소송에 적극 대응해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의결했다는 점을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도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금 법원 판단은 전체 소송 과정의 일부이자 첫 단추 정도의 의미, 시작 단계서 이뤄진 예비적 판단 정도"라며 "방통위는 2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5인 이상으로 하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법의 규정이 2인이라면 2인 형태로 운영된다고 해서 그것을 비정상이라거나 위법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KBS 이사 선임 건에 대해서는 분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MBC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은 법원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히며 방통위 정상화를 촉구했다.

권 이사장은 26일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의 가치가 살아있음을 법원이 보여준 것"이라며 "양심 있는 결정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은 오늘 결정에서 2인 체제 방통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방통위법이 기본적·원칙적으로 정치적 다양성을 반영한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회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면서 "이번 결정이 대통령과 국회가 함께 방통위를 본연의 합의제 기구로 되돌리기 위한 대화에 나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법원의 역사적인 결정을 환영한다"며 "이번 법원 결정에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의 존재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담겼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결정은 2인 체제의 구성적 위법성, 이사 선임의 절차적 불법성, 소개하기도 부끄러운 저질 이사 임명이 얼마나 무도한지를 보여준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역사적인 결단"이라며 "무엇보다 방송장악 쿠데타가 저지된 원천은 MBC마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 다수 시청자, 시민들의 마음이 모인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론자유를 빼앗긴 뒤 되찾는 것, 한번 장악된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는 역사적 교훈을 MBC 구성원들은 잘 알고 있다"며 "어떤 역경 속에서도 모든 음모에 맞설 것"이라고 전했다.

與 "삼권분립 원칙 반하는 결정" vs 野 "MBC 장악시도에 제동.. 사필귀정"

법원의 판단에 대해 여야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는 26일 입장문에서 "서울행정법원의 방문진 신임 이사 임명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 결정에 대해 국민의힘은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엄연히 행정기관에 해당하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절차와 규정에 따라 이뤄진 인사권 집행이 사법부 결정에 의해 그 효력이 침해된 것은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분립 원칙에 반한다"며 "공영방송 정상화라는 윤석열 정부 국정 주요 과제 추진에 있어 사법부의 돌발적 결정으로 인해 중대한 지장이 생긴 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를 향해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 결정에 대해 즉각 항고하고, 본안소송에도 적극 임해 방문진 선임의 적법성과 합당성을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법원이 윤석열 정권의 MBC 장악 시도에 제동을 건 것으로 사필귀정의 당연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오늘 판결로, 여권 인사만으로 구성된 '2인 방통위'가 갖는 위법성, 부실하고 졸속 이사 선임의 위법성이 재확인됐다"며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의 불법적 방송 장악에 맞서 언론 자유를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은 반칙과 불법으로 점철된 MBC 장악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조국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법원이 윤석열 정권의 '언론 장악' 폭주 기관차에 제동을 걸었다"며 "당연한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부적격 인사로 판명된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부터 해임하고, 두 사람이 결정한 공영방송 이사진 인사도 물리라"며 "'합의제 기구' 성격에 맞는 방통위를 구성한 뒤 새로 인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사법부의 판단은 늘 존중한다"면서 "항고심에서 판단받게 될 것이다.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법원의 판단이 추후 이진숙 위원장의 탄핵심판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위원장은 지난 2일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탄핵소추안이 의결돼 헌법재판소 판단을 앞두고 있다.

야당은 당시 이 위원장의 탄핵 사유로 방통위 2인 체제 의결에 대한 위법성과 졸속 심의를 들었는데 이날 법원이 이를 모두 인정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은 위법성을 따지는 만큼 이날 판결은 물론 추후 본안 소송 결과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원식 의장, 방송4법 중재안 다시 제안한다

이날 법원의 판결로 야당이 추진 중인 방송4법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방송4법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재표결을 앞두고 있다. 현재로서는 재표결을 하더라도 국민의힘의 반대를 극복하기 어려워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일각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야에 '방송4법' 중재안을 다시 제안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앞서 우 의장은 지난달 여야와 정부가 참여한 범국민협의체를 꾸려 새로운 공영방송 지배체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정부·여당을 향해서는 방문진 등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절차를 중단하고, 야당을 향해서는 방송4법 처리 강행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방문진 이사 선임을 강행하고, 야당도 방송4법을 임시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면서 중재안은 무산됐다.

27일 한국일보는 우 의장이 여야에 '방송4법' 중재안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국민의힘이 먼저 중재안을 걷어찼지만 결국 법원 결정에 제동이 걸린 것 아니냐"면서 "의장으로서는 다시 한번 여야가 끝장 토론을 하라고 제안할 명분이 생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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