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데 이어 대통령실이 8일 여·야·의·정 협의체에 들어오는 의사단체의 대표성을 인정해주겠다고 밝혔다. ‘모든 의사단체의 통일된 안’을 요구해왔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야당까지 들어와서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으니 여기에 (의사단체가) 들어왔을 때는 합리적인 안만 내면 그것을 통일된 안으로 보겠다는 입장”이라며 “거기서 합리적인 안을 낸다면 당연히 원점에서, 2000명이라는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제시한 안을 토대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의사단체들이 ‘과학적 분석에 근거한 통일된 합리적 의견’을 제시할 경우 의대 증원 숫자를 논의해볼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이 현실성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논의의 형식에서 일부 양보한 것이지만 이런 정도로 의사단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전날 국무조정실 입장문을 통해 “2026년 의대 증원 유예 결정은 사실과 다르다”며 “의료계가 계속해서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재논의는 불가하다”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래서는 정부의 정확한 입장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타협안을 먼저 내놓기보다 발언의 뉘앙스만 질금 조절해 가면서 ‘간보기’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환자들이 치료도 못 받고 죽어가는 응급실 대란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너무 한가하고 안이한 태도 아닌가. 정부가 진정으로 사태 해결을 바란다면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그간의 혼선을 사과하고 여·야·의·정 협의체에 힘을 실어야 한다. 안이한 인식과 대응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관료들을 문책할 필요도 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증원 2025년, 2026년까지 백지화하고 2027년부터 증원을 논의”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당장 9일부터 2025학년도 대입 수시 원서접수가 시작되는 마당에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확정된 정책의 방향을 무산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뿐이다.

의·정 간 대화가 중단된 상황에서 추석 의료대란 우려는 커지고 있다. 이달 5일 현재 27개 중증·응급질환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88곳으로, 평시인 2월 첫째 주(109곳)보다 20% 가까이 줄었다. ‘응급실 뺑뺑이’ 사고가 속출하면서 필수의료 대응 체계는 한계에 이르고 있다. 상대가 먼저 백기를 들어야 대화할 수 있다는 강경책만 고수하다가는 파국만 있을 뿐이다.

8일 서울 양천구 목동 이대목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입구에 매주 수요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 30분까지 성인 진료를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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