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목동 이대목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들어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최근 응급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응급실 뺑뺑이’로 피해를 보는 환자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군의관 등의 실명을 악의적으로 공개한 블랙리스트가 등장했다. 해당 사이트에는 개개인의 이름과 소속, 연락처뿐 아니라 구체적인 사생활까지 담겨 도를 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9일 ‘감사한 의사 명단’이라는 제목의 아카이브 형식의 사이트에는 “민족 대 명절 추석 기념”이라면서 ‘응급실 부역’이라는 이름으로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 명단이 올라왔다. 의사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이트에는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의사들에 대한 정보가 매주 업데이트되는데, 지난 7일 “수련병원 응급실 특별편”이라며 응급실 근무 블랙리스트가 새로 등장했다.

여기에는 ‘응급의학과 추석 때 힘써주시는 선생님들 새로 생기면 급구합니다’라며 응급실 의사들의 명단을 급히 제보받는다는 글이 적혀있다. 해당 명단에는 “000 선생님 감사합니다” “불법파업을 중단하고 환자 곁을 지키시기로 결심한 것 감사합니다” 등의 표현과 함께 일부 의사들의 실명이 적혀 있다.

또 ‘군 복무 중인 와중에도 응급의료를 지켜주시는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면서 응급실에 파견돼 근무 중인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추정되는 의사들의 실명도 공개됐다. 명단에는 “당직 서며 응급실 정상화 위해 노력 중” “유일하게 병원에서 쓸모를 인정받아 1개월 더 연장한, 정말 감사한 선생님” 등의 문구가 달렸다.

복지부는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들을 위축시키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 행위”라면서 “이와 같이 의료현장에서 성실히 근무하시는 의사들을 악의적으로 공개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수사기관과 협조하여 엄단하겠다”고 했다. 일부 군의관들은 이번 사건으로 대인기피증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이트에는 응급실 근무 의사들 외에도 하반기 전공의 모집 지원자, 의대 증원 찬성자, 수련병원 복귀 전공의, 복귀를 독려하는 의대 교수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담겨있다. 또 의료계에 악의적인 글을 썼다며 일부 기자의 이름과 기사 제목 등도 함께 공개됐다.

해당 사이트에는 단순히 이름 뿐 아니라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의사들의 연락처와 가족 관계, 연애사 등 구체적인 사생활도 공개됐다. 지방대 출신 전공의에 대해 “00대는 처음들어는데 덕분에 알게됐다”라고 조롱하는 글도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응급실 의사 부족 등으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일 부산의 공사현장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70대 근로자가 수술할 의사를 찾지 못해 사망했고, 5일 광주에서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여대생이 직선거리로 100m가량인 대학병원 응급실 대신 다른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가 중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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