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사건 결정 선고를 위해 착석한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 정효진 기자

헌법재판소 재판관 공백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다. 퇴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이종석 헌법재판소 소장과 이영진·김기영 헌재 재판관 등 3명의 후임 선출을 놓고 여야 정치권이 힘겨루기만 벌이면서 사실상 다음달 재판관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여야는 국회 선출 몫의 재판관 3명 자리의 추천 권한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정치적 셈법을 계산하며 대치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최고 사법기관인 헌재의 재판관 결원 사태가 여야의 정쟁 속에서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소장과 이·김 재판관 등 3명의 임기는 다음달 17일 끝날 예정이다. 모두 9명의 재판관 중 3명의 자리가 비워지게 되는 것이다. 헌재가 사건을 심리하려면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한다. 재판관 7명이 안 되면 변론도 열 수 없다. 이들의 후임을 제 때 선출하지 않는다면 재판관 공백 사태가 시작되고 이는 헌재의 ‘기능정지 상황’으로 직결된다. 실제로 헌재 측은 “이번 달에 결정 선고 날짜를 잡지 않았고 다음 달에도 미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의 추천·선출 권한이 국회에 있다는 점이다. 여야는 ‘추천 몫’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여·야가 1명씩 선출하고 나머지 1명은 여·야 합의로 뽑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판관 선출제도가 있어온 이례로 계속돼온 관례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대로 민주당이 2명, 국민의힘이 1명을 선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에선 지난 2018년 20대 국회 이후 바른미래당 등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 자격을 얻은 제3당에게 재판관 1명 추천권을 줬던 사례를 들었다. 올해 22대 국회에선 교섭단체에 이른 제3당이 없으니 의석수 분포에 따라 추천권도 나눠야 한다는 논리다.

여야의 정치적 셈법도 후임 선출을 더디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헌재에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손준성 검사 탄핵 심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문회 권한쟁의심판 사건 등 심리가 진행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다음달 2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송금 관련 수사를 담당한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에 대한 탄핵청문회를 진행한다. 청문회를 마치고 국회 의결을 거치면 박 검사 탄핵안도 헌재에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재판관 2명 선출 몫’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유가 재판부 구성을 늦춰 이 방통위원장 등 탄핵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라고 의심한다. 지난 10일 김복형 재판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은 “다수당에서 재판관 3명에 대한 임명 절차를 일부러 진행하지 않아 탄핵소추된 방통위원장의 직무를 끝없이 정지되도록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며 “탄핵심판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켜버리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여·야 간 대립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앞서 헌재는 2018년에도 5명의 재판관의 한꺼번에 퇴임하면서 ‘4인 체제’로 운영되며 사실상 기능정지 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헌재에서 일했던 한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지켜야 할 헌재의 기능 정지는 막아야 한다”면서 “국회가 늦지 않게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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