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22조 원, 매출액 1조 8천억 원, 자산 총액 15조 6천억 원 규모의 기업이 있습니다. 이 기업의 서비스는 하루에만 700만 명이 이용합니다. 바로 서울에서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공사가 소유한 지하철 역사만 275곳으로 이곳에서 출발한 열차들은 하루에만 지구 세 바퀴를 돌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나란히 줄을 세우자면 재계 30위 규모에 해당할 정도로 초대형 공기업 중 하나로 꼽히고, 지방 공기업 중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입니다. 그런데 최근 공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납품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의혹에 대해선 수사기관의 수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부 직원들은 "지금까지 보도된 것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고도 말합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그 일각에 대해서 다뤄봅니다.

골프접대


연속적인 납품 비리의 시작은 서울교통공사 내부에서 나왔습니다. 지난 6월 공사는 기술본부 소속의 A 처장과 다른 직원 2명을 직위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골프 접대와 향응 등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앞서 공사 측은 A 씨가 납품 업체로부터 골프 접대 등을 받았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경찰에 A 씨를 고발했습니다. 공사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온 뒤에 인사 조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 조사가 막 시작된 단계에서 최고 수준의 징계를 결정했습니다. 공사 감사실 관계자는 "공사 임직원은 납품 업체 직원들에게 골프나 식사 접대를 받지 못하도록 내부 규정이 되어 있다. 경찰 수사와 별개로 감사실 조사에서 이를 어긴 것이 명백하게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A 씨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뇌물 등을 제공한 의혹을 받는 납품 업체가 공사 측에 어떤 물품을 납품하는 곳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환기필터 납품비리


취재진은 '골프접대' 사건 취재 과정에서 '이 사건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의혹에 연루된 직원들은 강제 수사권이 없는 감사실 조사만으로 혐의가 바로 인정될 만큼 허술하게 접대를 받아왔기 때문에 추가적인 비리 의혹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실제 공사 관계자와 납품 업체 등 다방면으로 취재해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두 번째 비리 의혹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 지하철은 하루에만 700만 명이 타고 내립니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만큼 먼지도 많이 발생해, 매번 미세먼지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SBS 취재진이 지하철 1호선 종각역의 내부 공기질을 측정한 결과, 기준치의 5배가 넘는 초미세먼지가 관측되기도 했습니다. 지하철 승강장에는 스탠드형 미세먼지 저감기가 설치되고, 역사 천장에는 미세먼지를 빨아들여서 정화하는 환기 설비가 설치되는데 이런 장비들이 오래돼 제 역할을 못한 겁니다. 서울 지하철 8개 노선 중 열차가 지하로 다니는 지하 역사는 252곳입니다. 이 중 78%에 해당하는 196개 역의 환기 설비가 20년이 넘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결국 공사는 노후 환기설비 전면 교체 작업에 나섰습니다. 200여 개의 역의 환기 설비를 교체하는 대규모 사업으로 일각에서는 최소 1,000억 원 이상 드는 규모라고 관측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공사가 환기 설비 중 정화 필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있었다는 첩보를 확보했습니다. 임직원들이 납품 업체 선정 과정에서 특정업체를 밀어줬다는 내용입니다. 경찰은 지난 7월 공사 본사 기계처, 계약처, 서버실과 기술사업소가 있는 사당동 별관에 수사관을 보내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을 벌였습니다. 경찰은 환기 필터 납품 계약에 연루된 이사급 임원 1명과 부장급 2명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입건했습니다. 그런데 입건된 부장급 2명은 다른 납품업체로부터 골프접대와 향응을 받은 혐의로 이미 직위해제된 A 씨 등이었습니다. 이들 임직원이 만들어 낸 계약은 취재진이 보기에도 수상했습니다. 이들은 B 업체로부터 물로 세척할 수 있는 철제 공기 필터를 납품받기로 했는데, 이 업체는 직원이 4명밖에 없는 신생 업체였습니다. 업계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왔던 다른 업체가 유사한 제품을 더 낮은 단가로 납품할 수 있다고 공사에 제시했지만, 공사는 B 업체와 계약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공사 내부에서 실험한 결과 B 업체의 제품은 부적합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피의자들이 속해있는 기계처에서는 B 업체의 필터에 대해서 내구성과 경제성, 안정성이 탁월해 향후 225개 역사로 확대 설치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지하철 공기질을 담당하는 대기환경처에서는 필터의 성능과 가격 등 모두 부적합하다며 사업 중단 의견까지 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최종적인 선택권은 기계처에 있었고, 결국 공사 안팎에서 B 업체는 아니라고 지적했음에도 최종적으로 B 업체가 선정됐습니다. 경찰은 해당 임직원들이 B 업체를 선정하는 대가로 금품이나 특혜를 제공 받았는지, 공사 내부의 다른 관련자는 없지는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물함 납품비리


다른 경찰서에서는 또 다른 납품 비리 의혹에 대해서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지하철 물품보관함 사업입니다. 물품보관함 중에서도 보관함의 잠금장치 부분을 새로 도입하는 과정에 비리는 없었는지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공사는 지난해 2월부터 1~8호선에 승강장에 있는 물품보관함 교체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미 상당수의 역사에는 신형 물품보관함이 들어와 있습니다. 새 물품보관함은 공사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휴대전화에 설치한 뒤 일회용 비밀번호를 받아서 사용하는 OTP 방식이 핵심입니다. 이 사업은 지하철 시설물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자회사, 서울도시철도엔진니어링에서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공사 자체 감사 과정에서 수상한 점이 포착됐습니다. 해당 OTP 기술의 특허 발명권자로 자회사 직원 2명이 등록돼 있었던 겁니다. 조사 결과 이 직원들은 자회사에 입사하기 전, OPT 사물함 납품업체의 대표 C 씨와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 직장 동료가 운영하는 회사가 납품 업체로 선정됐고, 그 기술의 발명권자로는 자회사 직원들이 등록돼 있었던 겁니다. 공사 내부 감사에서도 이런 관계를 의심스럽게 보고 유착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해당 직원들은 "전 직장에 같이 해당 기술 개발에 참여해 C 대표가 특허를 등록해 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감사에서는 자회사 직원들과 C 씨가 문서를 조작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자회사는 납품 업체 선정 과정에서 단가 책정을 위해서 C 씨 업체를 포함해 총 세 곳의 견적서를 메일로 받았는데, 나머지 두 업체의 견적서도 C 씨가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업체들 간의 담합 또는 서류 위조의 가능성이 있는데, 감사실에서는 후자에 가능성을 더 높게 봤습니다. 내부 직원들도 OTP가 아닌 범용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키오스크 방식 또는 QR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감사실 직원도 "비용적인 측면이나 사용자 편의적인 측면에서 키오스크 방식이 더욱 적합하다"라며 "OTP 납품 업체와 자회사의 유착 가능성도 높다"는 의견을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물품보관함은 출퇴근을 하는 사람보다 타지역에서 방문해 짐이 많은 사람, 여행으로 서울을 찾은 외국인 등이 주로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사용하는 사람도 쉽게 물품을 맡길 수 있도록 제작되어야 합니다. 실제 취재진이 OTP 사물함이 설치된 서울 주요 역사를 찾아가 봤습니다. 경남 김해에서 서울을 찾아온 한 시민은 몇 분을 물품보관함 앞에서 앉아 있다가 짐을 맡기지 않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시민은 "새로 어플을 설치해야 된다 해서, 불편해서 사용을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중국인 유학생들도 짐을 맡기러 왔다가 OTP라는 생소한 단어에 막혔습니다. 유학생은 "OTP라는 것을 처음 듣는다. 물건 맡기기 위해서 앱을 깔아야 하는 게 상당히 번거롭다. QR 방식이 훨씬 사용하기 편했다"고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OTP 방식을 채택한 것에 대해서 공사 측은 "원격 관리가 쉽고, 보안에 강점이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납품 비리는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견적서 위조 의혹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었던 것을 인정했습니다. 물품보관함 사업과 관련해 경찰은 공사와 자회사 직원들, 납품업체 사장 C 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대 목소리는 묵살


공사를 위해 바른 목소리를 내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묵살당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물품보관함 납품비리에 대해서 오랜 시간 감사를 벌였던 감사실 소속 D 부장이 있습니다. D 부장은 지금은 감사실이 아닌 현장 차고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D 부장은 "지나치게 자세히 비리를 밝혀내다가 지금 감사 업무에서 배제됐다. 감사 보고서를 올리고 몇 달 만에 쫓겨났다"고 밝혔습니다. 서울교통공사 내부 규정에는 감사실의 경우 감사 업무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위해서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3년 이상 근속을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D 부장은 2년도 되지 않은 시점, 물품보관함 감사를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고 다른 곳으로 쫓겨났습니다. D 부장은 "다른 직원들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가 다른 부서로 전출된 경우가 있다"라며 "다른 한 직원은 OTP 물품보관함에 반대하다가 회사에 실망하고 스스로 퇴사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공사 측은 직원들의 부서 이동에 대해 "통상적인 인사 조치"라고 해명했습니다.
 

'시민의 발' 지하철


최근 서울교통공사를 보면 각종 납품 비리 뿐 아니라 독도 조형물 철거 등 안 좋은 기사들을 몰고 다닙니다.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직장으로 다니던 사람은 이런 기사를 접했다고 내일부터 지하철을 안 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수뇌부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는 문제들을 직원들의 개인의 일탈로만 볼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로 잡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내놔야 할 시점입니다.

(관련 SBS 8뉴스는 아래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 지하철 노후 환기구 필터 방치하더니…교체한다며 '납품 비리'
▶ [단독] 수상한 사물함 교체…서울교통공사 또 납품 비리?
▶ [단독] "OTP 방식 너무 비싸" 반대했더니…"다른 부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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