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귀국한 이종섭 주오스트레일리아 대사는 채 상병 사건 수사에 ‘이례적 지시’를 한 장본인이다. 그는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 보고서에 직접 결재한 뒤 하루 만에 사건의 자신의 결재를 정반대로 뒤집고 경찰 이첩을 중단시켰다. ‘지시를 번복했다’는 사실 자체에는 관계인 누구도 이견이 없다. 남은 쟁점은 ‘이례적 지시’를 외압으로 판단해 이 대사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적용할 수 있다면 ‘누군가’의 지시에 따른 행위였는지 여부다. ‘수사외압 의혹’이라는 사건 핵심을 규명할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인 셈이다. ‘외압은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라 주장 중인 박정훈 대령 쪽이 이날 ‘우리가 증인 신청을 하면 제1번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라고 말한 이유다.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 대령 뿐 아니라 복수의 해병대 수사단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윤 대통령 격노설’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채상병 사건의 조사 결과가 사실상 축소된 채 경찰 최종 이첩된 것은 ‘대통령 지시’라는 것이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7월30일 박 대령이 임성근 당시 해병대1사단장을 포함한 사건 관계자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을 적용해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한다는 보고를 받고 승인했다가 이튿날 입장을 바꿔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윤 대통령 격노’로 인해 국방부 장관이 정당하게 내린 업무지시를 번복했다면 ‘직권을 남용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셈이 되어 윤 대통령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이 대사의 결재 번복 이유가 이번 수사의 핵심이고, 이를 밝히기 위해 이 대사 수사가 중요한 이유다.

정황은 많다. 이 대사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통해 사건 이첩 보류를 지시하기 10여분 전에 대통령실 관계자와 통화한 기록이 확인됐다는 지난 7일 문화방송(MBC)이 보도 내용이 대표적이다. 그외에도 해병대 수사단이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넘긴 직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과 해병대 사령관 쪽 간 전화통화가 있었던 사실도 한겨레 보도로 확인된 바 있다. 사건 회수에 대통령실의 개입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유력한 정황이다.

이날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 열린 박 대령의 3차 공판기일에는 경찰로 이첩된 사건기록을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해온 지난해 8월2일, 회수 직전 대통령실 파견 해병대 김아무개 대령과 통화를 한 김화동 해병대 사령관 비서실장(대령)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대령은 당시 통화에 대한 질문에 “(김 대령과) 통화는 했지만 통화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6개월 전의 일이다. 통화한 걸 기억하느냐는 질문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라며 언성을 높였다. 박 대령의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검찰 쪽 증인 신청이 끝나면 우리가 증인 신청을 할 차례인데 제1번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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