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사. ⓒ미디어오늘

한겨레 편집국 국장단이 가족돌봄휴직을 신청한 기자에게 돌봄 대상이 시부모라는 이유로 형제자매 간병 순번 등 추가 증빙을 요구하며 반려해 노동조합이 사측과 편집국 차원의 공개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한겨레 기자 A씨는 의식불명인 시어머니 간병을 위해 가족돌봄휴직을 신청했다. 인사팀(인재개발부)에 문의해 요청받은 시어머니의 진단서와 관계 증명서류를 갖추고, 남편의 직업(군인)과 어머니의 급작스런 병환으로 인한 우울증세 때문에 본인이 간병하기로 했다는 설명을 담은 사유서도 제출했다. 인사팀 담당자에게 “이 정도면 됐다”고 듣고 부서장 승인을 받았지만 신청은 부국장 선에서 반려됐다.

한겨레 B 부국장은 “일반적으로 의식불명 또는 거동 불가 상태 환자가 간병인이 있는 경우”에는 “음식섭취와 대소변 처리, 욕창 발생 방지를 위한 정기운동 등을 간병인이 담당”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지 또는 간병인과 어떤 식으로 업무를 나눌지 등에 관한 구체적 설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해당 부국장은 A 기자가 시어머니가 있는 대구 병원 현지에 어떻게 머물며 간병할지에 대한 설명과 가족회의를 연 형제자매가 누구인지, 이들이 어떤 순번으로 얼마만큼 간병을 담당하기로 했는지 등에 관한 증빙자료도 요구했다.

A 기자는 노보에서 “간병인과 업무 분장을 어떻게 할지, 가족끼리 어떤 순번으로 간병할지를 회사에 소명하고 허락받아야 할 일인가”라고 되물으며 “실제로는 간병이 필요하지 않은데 거짓말한다는 의심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족돌봄휴직을 하지 말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번 일을 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는 경영진과 뉴스룸국의 공개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이주현 편집국장은 노보를 통해 “가족돌봄휴직을 시댁으로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관리자로서 기사 데스킹처럼 보완이 필요하면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겨레 사규에는 ‘가족돌봄휴직을 신청한 직원에게 돌봄이 필요한 가족의 건강상태, 신청인 외의 가족 등의 돌봄 가능 여부 등 직원의 가족돌봄휴직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가족돌봄휴직 지원 대상엔 ‘배우자의 부모’가 이미 포함돼 있는 데다, 그간 한겨레가 가족돌봄휴직 신청에 이런 수준의 자료를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게 한겨레 구성원들 설명이다.

사업자의 노동자 가족돌봄휴직 지원 의무를 규정한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조부모, 부모,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 자녀 또는 손자녀의 질병, 사고, 노령으로 인하여 그 가족을 돌보기 위한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업주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휴가를 부여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땐 5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린다. 한겨레는 휴직제도를 무급으로 실시하고 있다.

▲한겨레 노보 ‘한소리’ 갈무리.

한겨레지부는 “인재개발부 쪽에 확인한 결과 그동안 가족돌봄휴직 승인 이력에 이런 정도까지 추가 자료를 요구한 사례는 없다”고 했다. 가족돌봄휴직 경험이 있는 한겨레 구성원은 미디어오늘에 “가족이 간헐적으로 입원 치료받아 측근 간병이 필요했다. 의사 소견서와 진단서, 가족관계 증빙자료를 내고, 가족이 어떻게 아프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신청했다. 별도 인사위나 추가요구 없이 승인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번의 경우는 (반려 이유가) 시댁이라서라는데, 그렇다면 관계를 증명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전례대로 처리하면 될 텐데 그렇게 빡빡하고 이례적으로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강연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노무사는 “가족회의 멤버 등을 밝히라는 등의 보완 조치 요구는 법 제정 이유와 목적, 해당 기자가 제시한 내용을 증빙하기 위한 일반적 요구를 넘어선 과도한 조치라 보여진다”고 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신청인의 시부모 자녀 중 누가 간병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묻는 일은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휴직 승인을 최종 결정하는 한겨레 인사위원회는 노보가 발행된 뒤인 지난 10일 회의에서 A 기자 신청 승인을 보류했다. 사측은 노무사 의견을 구한 뒤 2차 인사위를 열어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A 기자는 “노동자가 돌봄휴직을 거부당하는 사례들을 문제 삼는 기사가 지난 5월에도 나왔고, 남성 기자가 24년 전 한겨레에서 처음 육아휴직을 쓴 사례가 기사화돼 언론계에 회자될 정도였다”며 “한겨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데에 깜짝 놀라는 주변 반응을 보고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주현 편집국장은 지난 11일 증빙 요구에 관한 전례를 묻자 “7월22일 국장 업무를 수행한 이래 가족돌봄휴직 신청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 국장은 “가족돌봄휴직 건은 아니나 국장 취임 전 부장·부국장으로서 결재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필요한 자료가 미비하다고 판단할 경우 수정 보완을 요청하거나 반려한 사례가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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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장은 추가 증빙이 회사 차원의 요구인지 묻자 “뉴스룸국장이 결정한 것으로 사장단과는 관련이 없다”며 “(정기 인사위에 맞춰) A 조합원이 소명 자료를 마련하기에 시간이 촉박할 수 있고 승인 절차가 늦어질 가능성이 높아 먼저 자료를 요청한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가족돌봄휴직 신청에 이번과 같은 증빙을 요구할지를 두고는 “앞으로도 사규에 따라 처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사측은 노보에 대한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사측은 “(노보에) ‘명백한 법 위반’ 등의 표현이 있으나, 본인 외 가족의 돌봄 가능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서류제출 요청은 남녀고용평등 법 시행령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으로 사규는 해당 시행령의 조문을 동일하게 반영하고 있다”며 “법 위반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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