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신체 장애에만 ‘투표 보조’ 규정한 조항

발달장애인들 “선거권 침해하는 차별적 조항”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 본투표일인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세검정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부암동제2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발달장애인들이 투표가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투표 보조인’을 둘 수 있는 장애 유형을 시각·신체의 장애로만 명시한 현행 공직선거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2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박모씨 등 발달장애인 3명은 지난해 11월12일 선거법 157조 6항과 7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 조항은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 투표가 불가능하면 가족이나 본인이 지명한 2명을 투표 보조인으로 둘 수 있고, 이에 해당하지 않으면 기표소 안에 2명 이상이 들어갈 수 없도록 규정한다. 박씨 등은 발달장애인이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 조항에 해당하지 않아 투표 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석돼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복지법상 발달장애인은 지적·자폐성장애인 등 발달 단계가 늦은 장애인으로, 시각·신체 장애인과 구분된다. 이들을 대리한 한상원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조문 자체만 보면 발달장애인의 선거권을 침해하고 비발달장애인이나 비장애인과도 차별하는 위헌적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헌법소원을 내게 된 계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발달장애인 12명은 투표 보조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당했다. 투표 보조인이 필요한 장애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전까지 선거관리위원회는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도 투표 보조인 동반을 허용했는데, 이때쯤부터 투표관리 매뉴얼에서 관련 내용이 삭제됐다. 선관위는 법률상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는 장애인이 ‘시각·신체 장애인’으로만 돼 있는 점을 반영해 매뉴얼을 정비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장에서 시각·신체 장애인처럼 투표가 어려운 경우엔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매뉴얼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지난해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차별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부산지법 1심 재판 중에는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산지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투표 보조인을 동반하지 않은 채 기표소에 입장하는 것이 실질적 선거권을 제한하는 면이 있다”면서도 “기표가 불가능할 땐 투표 보조인 동반 입장을 다시 요구할 수 있다”며 기각했다. 이어 “현장에서 기표행위 가능 발달장애인과 불가능 발달장애인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이유만으로 이 조항 자체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법원이 신청을 기각하자 이들은 직접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법원은 기표 가능 발달장애인과 불가능 발달장애인을 자의적으로 나눠 신청을 기각했다”며 “선거법 조항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이처럼) 참정권이 제한되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부산지법에서는 패소했지만, 이후 1년여 만인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9부(재판장 고승일)는 이들이 서울에서 제기한 차별구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투표 보조는 원고들이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며 매뉴얼상 투표 보조 대상에 발달장애인도 포함하라고 명했다. 이들은 다음 달 부산에서 2심 선고도 앞두고 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인을 명확히 하는 법률 개정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요구한다. 지난달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발달장애인 등 지적 장애인도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 변호사는 “법률 해석을 둘러싼 불필요한 혼란을 해소하고, 발달장애인 참정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해 입법적 논의도 함께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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